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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이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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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사화야, 우지 마라    
글쓴이 : 이성화    20-07-21 23:07    조회 : 5,258

상사화(相思花), 우지 마라

이성화

 

혼자 음악을 듣다 보면 가끔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최근에는 홍자의 <상사화>를 들으면서 울었다. 식구들이 모두 나간 텅 빈 집에서, 혼자 운전하는 차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자꾸만 내 눈물샘을 터트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랬던가. 스스로의 삶을 멀리서 볼 수 없기 때문인지 내 인생은 늘 고되고 힘들었다. 그렇다 보니 어지간히 힘든 일은 힘든 줄도 모르고 겪어 내기도 했다. 이리저리 치이느라 이 방향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고 그저 냅다 달릴 때도 많았다. 한밤중에 불을 켜 놓은 남의 집의 창문을 보면 너무도 평안해 보이는데, 나만 밖에서 추위에 떠는 것 같았다. 홍자가 서글픈 목소리로 왜 이리 고된지, 이게 맞는지, 나만 이런지, 툭툭 내뱉으니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밀려왔다.

처음엔 늙었나? 왜 트로트가 좋지?’ 싶었다. 트로트는 아무래도 어르신 정서의 노래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장윤정의 노래는 좋아했지만, 그 외에는 다 촌스럽게 느껴졌다. 신승훈, 이승환의 발라드를 듣고 GOD의 랩을 열심히 따라 하고 윤도현의 록에 열광했었는데, 어쩌다 홍자가 부르는 <상사화>에 눈물짓고 김양의 <우지 마라>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됐을까.

장윤정, 홍진영의 뒤를 잇는 100억 트롯걸을 찾는다는 이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의 우승 상금은 3천만 원이지만 우승자는 최고 작곡가인 조영수 작곡가의 곡을 받고 방송사는 각종 행사 무대 100회를 보장해준다고 했다. 출연자들은 고등부’, ‘직장인부’, ‘마미부등 여러 팀으로 나뉘어 나왔는데, 내가 한눈에 아니, 한귀에 반했던 곡은 홍자가 처음 부른 노래 <상사화>였다. 홍자는 무명가수이기에 현역부로 참가했다. 합격점이다 싶으면 심사위원이 하트 버튼을 누르고 하트 수에 따라 합격, 불합격이 갈렸다. 나를 트로트에 빠지게 만든 홍자는 심사위원 마음도 단번에 사로잡아 올 하트를 받고 다음 라운드에 바로 진출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 속해 있는 마미부에는 셋째 아이를 낳고 몸조리 중인 엄마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꿈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녀들은 강인했지만, 눈물을 참진 못했다. 엄마라는 이름 하나로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에는 그녀들이 가진 노래에 대한 열정이 너무도 컸을 게다. 상황에 밀려서, 어쩔 수 없어서 접어야만 했던 꿈을 얘기하려는 순간마다 흐르는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트로트를 잘 모르는 나도 이름을 들어본, 제법 인지도 있는 가수들도 많이 참가했다. 그들은 인지도가 있기는 하지만 트로트라는 장르의 한계 때문에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아 참가를 결심했다고 했다. 장윤정과 친구 사이라는 김양은 자신의 노래인 <우지마라>로 첫 무대를 장식했다. 경쾌한 리듬을 타고 밝은 표정으로 노래하는 김양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묘하게도 가슴이 아팠다. 홍자와 마찬가지로 올 하트를 받고 2라운드에 올라간 김양은 3라운드에서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어쩌면 내가 들었던 것은 그들의 삶이었고 느낀 것은 간절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아이돌에 밀려 가요계의 주변부를 맴돌아야 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밀리지 않았을 텐데. 삶의 고단함에 지쳐 가고자 하는 길을 포기해야 하나, 그만 놓아야 하나 고민했을 그들. 그 간절함을 담은 애절한 목소리가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왔나 보다.

노래가 좋다는 마음만이 전부라면 그냥 노래방에서 목청껏 부르면 그만이다. 가수가 되려는 그녀들은 그저 노래가 좋은 것뿐이라면서도 꼭 무대에 서는 가수가 되기를 원한다. 그냥 부르는 노래와 가수가 되어 부르는 노래는 다른 것일까? 가만히 보니 크건 작건 무대에 서서 관객들과 호흡할 때 그녀들의 노래는 완성되는 것 같다. 나처럼 듣고 감동해 주는 청중이 있을 때 그냥 부르는 노래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닐까.

나도 그럴까? 그저 글 쓰는 것이 좋다면 그냥 쓰기만 하면 될 텐데, 왜 그렇게 작가가 되고 싶은 건지.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수필잡지에 글도 싣고 해마다 동인지도 내지만 글에 대한 목마름이 쉬 가시질 않는다. 나는 책을 읽는 순간만은 늘 행복했다. 누군가가 내 글로 인해 그럴 수 있길 바랐음에도 아직은 그런 이가 없으니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스스로를 포함한 누군가의 마음에 남는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일까.

상사화는 잎이 완전히 말라 없어진 뒤에 꽃이 피어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기에 꽃말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다. 오랜 무명생활로 꿈보다 무거운 생활고에 고단했을 그녀, 홍자는 이제 그 꿈을 이루어 가는 중이다. 어쩌면 <내일은 미스트롯>에서 3위를 하는 순간부터 그녀는 한 차원을 건너간 건지도 모른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원하는 바를 이루어 정점에 서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첫 라운드에서 올 하트를 받고도 3라운드에서 탈락한 김양처럼 혹은 첫 라운드나 예선에서 탈락한 사람들처럼 대부분은 그 건너편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스러져간다. 김양처럼 피나는 노력을 꾸준히 했음에도 실력이 모자라서, 운이 없어서, 때를 잘못 만나서.

베스트셀러라도 하나 내지 못한다면 나도 그렇게 발 구르기 편에 속하게 될 테다. 누군가 몇 사람 내 글이 좋다며 행복해한들 나는 그저 생활고에 허덕이는 무명작가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저 쓰는 일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김양처럼 달려라 외길인생 후회는 없다부르짖으며 계속 글을 쓸 나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때는 김양의 <우지 마라>를 들으며 눈물을 쏟을지도 모르겠다.


수수밭길동인지 4호 <유칼립투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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