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백두현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bduhyeon@hanmail.net
* 홈페이지 :
  솔로몬의 지혜    
글쓴이 : 백두현    19-11-27 10:40    조회 : 5,415

솔로몬의 지혜

 창작수필2019겨울호/백두현                                

지인 중에 13녀를 슬하에 두고 고희에 이른 부부가 있다. 네 자녀 모두 출가했는데 밖에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만날 때마다 자식들 얘기를 수시로 했다. 그때마다 자랑이기보다는 세상 어느 부모라도 보편적으로 그렇듯 대부분 걱정거리가 많았다. 자녀들 중 유일한 아들은 억센 딸들 가운데서 나약하게 자란 것은 아닌지 염려하고 있었다. 또한 외아들이라서 장차 이어받게 될 기제사로 힘들까봐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막내딸은 막내라서 언제 철이 들지 불안하다고 했다. 더불어 멀리 사는 딸은 자주 못 봐서 걱정이고 가까이 살아 자주 보는 딸은 사위 직장이 탄탄하지 못해 걱정이라고 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을 철저하게 실천하며 살았는데 뉘 집이든 흔히 겪는 일이라 내 입장에서는 별다른 관심 없이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들 부부는 살던 집만 남겨두고 거의 모든 재산을 현금화하기 시작했다. 제법 많은 돈이 통장에 쌓였는데 주변에서는 죽으려고 마음이 변한 것 아닌가 염려했지만 정작 속내는 엉뚱한데 있었다. 놀랍게도 자녀들이 부모를 찾아올 때마다 백만 원씩 용돈을 주려는 용도라는 것이다. 스스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와 같은 빈도로 자녀들이 부모를 찾는다면 약 이십 년 후에는 가지고 있는 현금이 바닥 날 것으로 예측한다고 했다. 본인들의 수명을 아흔 안팎으로 보고 통장의 현금을 분할해서 나누어주려는 모양이다. 언젠가 부부 모두 죽게 되면 자연스럽게 남은 재산이 자녀들에게 상속되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연금처럼 용돈으로 나누어 주겠다는 생각이다. 하루하루가 급속하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노인답게 놀랍도록 참신한 상속방법을 스스로 개발한 것 같아서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물론 탈세를 위한 목적은 절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돈을 전부 합해 상속으로 간주해도 큰 세금이 나올 것 같지 않을뿐더러 아직 부모가 살아있으니 세법대로 증여로 쳐도 면세점 이하일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게라도 자식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다는 의미로 읽혔다. 더불어 조금이라도 더 효를 실천하는 자식에게 더 많이 상속하고 싶다는 의미라서 이해가 갔다. 멀리 사는 자녀가 조금 불리하긴 하겠지만 그런대로 부모입장에선 공평한 처사였다. 어쩌면 장차 겪게 될지도 모르는 자식들 간 재산싸움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리라. 갈수록 처가나 시댁을 멀리하는 경향 때문에 자녀들 중 누군가 불효할 확률을 줄이는 효과까지 생각하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인가. 곱씹어볼수록 스스로는 멋진 부모로 남을 수 있고 자녀들은 저마다 효자로 살아가게 만드는 방법이라 누가 뭐래도 솔로몬의 지혜가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평균수명은 길어져 노인인구는 급증하기 마련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이는 많아지고 그나마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많이 갖지 않는다. 두 집 건너 한 집은 둘도 많다는 생각이라 노인을 부양할 젊은 인구는 끝없이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후세들의 어깨가 무겁다. 병원에 입원해도 가족들이 간병하는 집은 이제 거의 없다. 전문 간병인이 간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노인들의 의식도 차차 바뀌기 시작해 자신의 말년은 자식들 집보다 요양병원을 택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 시각에 따라 바람직해보이기도 하고 매정해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진리는 변하는 것이고 가치관도 변하는 것이라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더라도 혈육의 정이 묽어질 리는 없다. 본디 자식이라는 것은 또 다른 나라는 의미라서 세태가 변한다고 따라 변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다. 삶이란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스스로의 삶은 조금씩 내려놓게 되지만 자식들에게는 오히려 애착이 더해지는 법이다,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보면서 쓸쓸한 말년을 위로받고 싶은 육친 간의 집착이 어찌 변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 부부의 기발한 상속 방법은 합리적이다. 아니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지만 질투보다 모방하는 방법이 유리하다. 나의 재산도 정리하면 그들 부부의 통장만큼 쌓일지 계산해보진 않았지만 기꺼이 실천해볼 생각이다. 나의 아들, 딸들아! 조금만 기다려라. 그리고 너희 아빠, 그렇게 돈 많지 않으니 너무 자주는 오지 않길 바란다.


 
   

백두현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26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84893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86496
26 딸들에게 바라기를 백두현 06-12 5353
25 품앗이 백두현 03-16 4168
24 솔로몬의 지혜 백두현 11-27 5416
23 어리석은 우두머리들 백두현 10-25 4834
22 외식(外食) 백두현 03-04 4985
21 마이동풍(馬耳東風) 백두현 02-21 4979
20 장모님의 숫자세기 백두현 02-14 4752
19 바나나를 먹으며 백두현 07-18 5318
18 엄마와 딸 백두현 05-29 3741
17 나는 새의 비밀(秘密) 백두현 04-16 6397
16 간벌(間伐) 백두현 03-26 7318
15 수필을 쓰는 이유 백두현 03-06 5405
14 설거지하는 男子 백두현 03-02 10447
13 고향집에 가면 백두현 02-08 4019
12 바늘도둑은 없어지고 백두현 10-31 12258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