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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이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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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문에    
글쓴이 : 이기식    19-10-18 09:08    조회 : 4,878
   이기식원고_이 때문에.hwp (15.0K) [1] DATE : 2019-10-18 09:08:12

 

이 때문에

                                                                             이기식 (don320@naver.com)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집착하고 있는 것이 있다. 다른 일들은 그런대로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서 사라지는데 이 생각만은 좀처럼 떠날 줄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인 6.25 전후는 전쟁 중이라 위생에까지 쓸 신경이 없던 시절이라 그런지 어디에서나 ‘이(?)’가 눈에 띄었다. 저녁상을 물린 다음 크게 할 일이 없을 땐 가족이 총동원되어 ‘이 사냥’을 할 때가 많았다. TV는 물론이고 라디오조차 귀한 때라 시간을 보내는 데는 안성맞춤인 일과 중의 하나였다. 동네를 지나다 보면 집집마다 가족들이 안방에 둘러앉아서 희미한 등잔이나 전등 밑에서 입고 있던 옷들을 뒤집어가며 ‘이 사냥’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와 처음 상면했을 생생한 기억이 난다. 시절이 생활이 힘들 때라 이집 저집에서 가족들 간의 싸우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자주 있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안방에서 아버지의 벼락같은 고함이 터지고, 언뜻 어머니의 볼멘 대꾸가 들리는가 싶으면, 그릇들 깨지는 소리와 부엌에 있던 쇠 풀무의 부서지는 소리로 이어진다. 이럴 때는 어딘가로 들어가 숨어있는 게 상책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이불을 넣어두는 구석방에서 숨을 죽이고 숨어 있는데, 사타구니 근처가 슬슬 가렵기 시작했다. 잠방이를 얼른 벗고 들여다보니 시커먼 이 한 마리가 슬금슬금 뒤뚱뒤뚱 방향도 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보리 알만했다. 만져보니 풍만한 감촉이 좋았다. 손톱으로 터트려보니 ‘투~욱’하는 뭉툭한 소리가 났다. 부모들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어느새 잊어버렸다. 그 쾌감이란!

  부모가 싸우신 뒤풀이로 애매하게 혼나고 난 뒤, 혹은 성적통지표 때문에 알밤을 서너 차례 맞거나 기성회비를 못 내어 수업 중에 교실 앞쪽에 세워지는 수모를 당한 뒤에는  어김없이 구석방에 기어들어 가 ‘이 사냥’에 나섰다.

  심지어 이의 새끼들인 서캐들도 사냥 대상이 되었다. 옷 솔기에 포도송이처럼 매달려 있기 때문에, 송이채로 두 손의 엄지손톱 사이에 집어넣고 한꺼번에 누르면 된다. '따다닥- ' 하는 따발총 소리가 난다. 좀 더 경쾌한 소리를 즐기기 위해서는 보조기구도 동원할 필요가 있다. 딱딱하고 매끄러운 유리판이나 금속판 등이 제격이다. 여기에 포획한 놈을 얹어 놓는다. 얻어먹지 못한 빈혈인 놈은 '찍'하고 메마른 소리가 나는 반면, 크고 통통한 녀석은 훨씬 감칠맛 나는 소리로 나를 즐겁게 했다. 그 순간이면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게 된다. 그때부터, 뭐든지 간에 꼭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냥 방법이 더욱 발전되었다. 당시에 '영화를 두 배로 즐기는 방법'이라지, '음악을 두 배로 즐겁게 듣는 방법'과 같은 책들을 읽다가 찾아낸 기술이었다. '이 죽이기를 두 배로 즐기는 방법'을 개발해냈다. 먼저 몸통을 터트리면 한번 소리가 난다. 그다음에 재빨리 머리 쪽을 터트리면 소리는 좀 작지만 '찍'하고 또 한 번 터진다. 목 부분의 통로가 좁아서 몸통이 터질 때 미처 머리 부분의 공기가 빠지지 못하고 남아있기 때문에 나는 소리다. 발명 특허라도 내고 싶은 아까운 기술이었으나 차일피일하다가 결국은 사장되고 말았다.

  '이 사냥'에 집착하면서도 한 가지 떠나지 않는 걱정이 있었다. 혹시 나에게도 무서운 살생본능이나 사디스트의 성격이 숨어있지 않은가 해서 불안하다. 또 세계 이차대전에 독일의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도 덩달아 머리에 떠올랐다. 나치는 유대인을 해충으로 생각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동족상잔이란 말도 떠올랐다. 이슬람의 수니파와 시아파와의 끊이지 않는 싸움, 발칸반도의 인종청소 등. 아주 가까운 예로는 우리의 한국전쟁도 동족상잔의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내 몸의 '이'도 내 피를 빨아먹었으니, 같은 피를 가진 동족 아닌가? 라는 심각한 고민도 했다.

  1960년도 후반부터인가 '이'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때 한창 많이 사용하던 연탄 때문이라고도 했고, 디디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내 이 사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잠이 잘 안 들 때면, 남들은 양을 한마리, 두마리 세는 모양인데, 나는 '이 사냥'을 시작한다. 한 마리, 두 마리, 두툼한 '이'를 '투~욱, 툭' 잡다 보면 어느새 나른한 잠이 온다. 다 잊어버리고. [2019/10/11]

 

 

(에세이피아 17호2017.7 '이 선생'  수정 보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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