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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부네 멍석    
글쓴이 : 오길순    19-08-18 09:12    조회 : 705

                                             흥부네 멍석

                                                                                                            오길순

메마른 마늘껍질이 은근히 포근하다. 나방이 날개처럼 바스러질 듯 엄부렁한 게 삼베홑이불인양 향기롭기도 하다. 흥부네 멍석도 이리 따스했을까? 스무 쪽도 넘는 알알이 돋은 통마늘 새싹이, 구멍 난 멍석 속에서 쏙쏙 머리를 내민 흥부네 아이들처럼 귀엽기도 하다.

지난해 6, 주먹만 한 통마늘을 석 접이나 보내온 후배가 말했다.

선배님, 밭에서 생산한 벌 마늘인데 단단해서 저장으로도 좋아요.”

정말 껍질 한 겹을 까면 연분홍장미꽃처럼 고운 서산 벌 마늘 한통은 두루 요긴했다. 굽고 지지고 양념으로 써도 남았다. 스무 남은 개나 들어 찬, 꽃잎 같은 한통은 한 끼 마늘 밥으로도 넉넉했다. 정성껏 담근 통마늘장아찌 한 접시는 끼니마다 식탁에 분홍장미꽃 한 송이를 꽂은 듯 근사했다.

그러고도 싹 튼 마늘이 한 접이나 남아 입춘의 밤을 붙잡았다. 일해백리, 마늘이 있는 식탁은 약국보다 낫다는데 햇마늘이 나올 유월까지 냉동실에서 몫을 다할 것이었다.

몇 년 전, 교직 40여년을 정년한 후배가 귀농한다 했을 때 걱정을 했었다. 주부로 교장으로 훌륭히 살았으련만, 농부가 되려는 그의 노후가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한 여름날 고구마 밭을 맬 때면 얼마나 뙤약볕이 숨 막히던가. 한 닷새 비라도 오지 않으면 아버지는 먼저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을 보며 노래하는 게 농사라는데, 대지에 등 굽혀 살아가는 후배 노부부가 밀레의 <<만종>>처럼 거룩해 보였다.

씨 뿌릴 땐 힘들어도 거둘 때는 다 잊어요.”

긍정적인 그의 성격이 3천 평 농사의 힘이었을 것이다. 허리도 벌써 굽었으련만, 감자며 들기름 참기름 등 최상품 농산물을 택배로 받을 때면 새벽에 알밤을 줍는 듯 옹골졌다. 농업대학까지 다니며 품질개량에 마음을 다하는 박사 교장부부가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 같아서 자랑스러웠다.

1999년 뉴욕타임즈는 지난 천년 동안 가장 좋은 식품이 마늘이었다고 소개했다. 고대 피라미드를 쌓던 노예들도 마늘로 힘을 얻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실제로 이집트 피라미드 근처에서 마늘을 파는 마늘장수들을 보았다. 그들도 구운 마늘에 죽염을 찍어 위암을 고쳤다는 이야기처럼 피라미드의 신통력을 믿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내 손은 기적의 약손>>저자 박웅은 마늘은 병든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암에서 무좀까지 놀라운 만능효과가 있으며 외용약으로도 발군의 효능이 있다고 적었다. ‘충치의 통증이나 맹수에 물렸을 때나 기생충 구제, 뇌의 질병에도 개선효과가 있다는 히포크라테스의 고증까지 곁들였다. 그 뿐이랴! 어느 해, 시든 마늘 한 줌을 화분에 넣었더니 1미터도 넘게 자란 군자란 대궁에 함박꽃처럼 핀 군자란이 봄내 즐거움을 준적도 있다.

중학교 1학년, 경기도 어느 소읍에서 유학하던 때였다. 1미터30센티, 열세 살 내 별명이 땅꼬마였다. 여름 방학 날, 충청도로 향한 땅꼬마의 귀가 길은 전쟁이 따로 없었다. 비포장도로에서 멀미로 흔들린 해거름, 추레한 몰골에 놀란 아버지는 서둘러 토종 수탉을 잡았다.

새벽기상을 맨 먼저 알렸던, 암탉을 가장 많이 거느린 벼슬 붉은 수탉이 아버지의 한 방에 꽂혔다. 천정에서 달아나는 쥐도 새총으로 잡던 아버지 실력은 본디 명사수였다. 남성은 암탉, 여성에게는 수탉이라며 육쪽 마늘 한 접을 골라 다듬으며 고개를 맞댄 부모님은 수행자 같았다. 알토란같은 마늘 한 톨이라도 허실할까, 근신하듯 조심스레 모두 쓸어 담았다.

100이라는 숫자는 정말 절대적일까? 수탉 속에 6,700알은 될 육쪽마늘 100통과 황기 한 다발이 고스란히 들어갔다. 황기는 인삼 감초 방풍과 함께 4대 명약 중의 하나라고도 한다.

아궁이 앞의 아버지는 장작불수행이 따로 없었다. 두어 시간 허리를 곧추 세우고는 혹시 불이 꺼지면 동티날라, 조용히 아궁이를 지켰다. 가마솥이 증기기관차처럼 김을 내고 한 접 마늘이 장렬히 산화했을 즈음 잉걸불은 거둬졌다. 참으로 경건한 아버지의 의식이었을 것이다.   

본디 무지와 사랑은 한 몸인가. 혼자 먹어야 약효가 난다는 아버지의 간절한 권유로 땅꼬마는 백숙 한 솥을 모두 먹어야 했다. 1학년도가 끝날 무렵, 집 가까이 전학을 온 것도 그해 여름 백숙 한 솥으로 개학날을 놓친 토사곽란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님은 늘 닭 뼈만 드셨다. ‘이 나이까지 이가 좋은 것도 닭 뼈 덕분이라며 고기는 6남매에게 넘겨주셨다. 그 땐 왜 몰랐을까? 날카로운 닭 뼈가 이에 상처를 낸다는 걸. 칠순을 넘기면서 틀니를 하셨을 때, 토종 닭 한 번 맘껏 고아 드린 적 없어 죄스러울 뿐이었다.

대여섯 살 적 여름 밤, 모깃불 멍석에서 선잠이 들었다. 이슬이 으스스한 그 때, 머리까지 씌워준 삼베홑이불이 얼마나 포근하던지, 다독다독 덮어주던 아버지 손길이 이슬방울에 새겨진 북극성처럼 잠결에도 선명했다. 닭들이 망나니처럼 마당을 헤집어도 웃음으로 기르던 낙천주의자. 그래선지 암탉들은 밤에도 굵은 쌍알을 낳았다. 소중한 닭장을 동네 청년들이 서리해 가도 허허 웃음으로 넘기던 아버지.

흔히들 육쪽 마늘을 선호한다. 한지에서 자란 육쪽 마늘은 난지에서 겨울을 난 벌 마늘에 비해 저장성도 좋다. 그래도 고장에 따라 물맛이 다르듯 토양에 따라 마늘의 풍미도 다르다. 볏짚 재거름이나 쇠똥 밑거름으로 자란 마늘이 유기농 식품으로 돌아오는 자연의 순환이 오묘하기만 하다.

6남매는 육쪽 마늘처럼 어긋남 없이 자랐다. 나방이날개처럼 온 몸을 바스러트린 아버지가 6남매의 견고한 성이었다. 겨울밤 아랫목이 식었을까, 요 밑에 깊이 손을 넣어보고는 가만히 솜이불을 덮어주시던 분, 가족들 단잠 깰까, 조곤조곤 군불을 지피면 식구들은 깊은 잠이 들었다. 아침밥을 짓는 어머니 손이 시릴까, 새벽마다 가마솥 물부터 데우던 애처가 아버지.

첫 달걀은 보약이다, 피어린 달걀을 툭! 깨서 입에 넣어주시던 분, 식성까지도 똑 닮았다며 작은 딸과 대화를 나누려 즐겨 상경하시던 분, 새벽 동살이 창문에 어릴 때까지 정담으로 날을 새우던 날, 그런 꿈같은 날이 다시 올 수 있다면...

지난 3, 아버지 기일에 육남매가 모두 모였다. 부모님께 효성을 다 한 큰 동생네 방이며 마루에 빼곡히 누운 열두 부부가 새벽까지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이만큼 사는 것은 아버지 덕분이라고. 온 몸이 바스러지도록 육남매를 지켜준, 흥부처럼 착하셨던 아버지는 흥부네 멍석보다도 따스했다고...

 

2019.7/8월호 <<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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