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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이원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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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검다리를 건너며    
글쓴이 : 이원예    19-08-07 15:39    조회 : 2,484


 피서지로 강가보다 더 좋은 데가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이 좋은 집터를 찾아 집을 짓듯, 잠시 묵을 텐트도 이왕이면 좋은 테에 치고 싶어한다. 우리도 좋은 강가를 찾아 낯선 시골길을 달리며 집시처럼, 때로는 탐험가처럼 주위의 산세와 길,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어느 소읍의 작은 강변에 닿았다. 산에 기대어 있는 강, 지나간 시간 어디쯤, 할머니의 등에 업혀 본적이 있을 것 같은 풍경, 그래서 강가는 고향처럼 푸근한 정이 흐른다.

 강의 이쪽과 중간엔 몇개의 징검다리가 듬성듬성 놓여 팔분음표, 또는 이분음표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는 듯하고 가운데는 삼각주같은 작은 섬이 있었다. 섬을 사이에 두고 강의 저쪽은 산비탈과 닿아있고,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살은 제법 세차게 흐르는 것 같았다. 일행들이 조은 자리를 찾아 텐트를 치는 동안 아이들과 나는 섬으로 건너가기 위해 징검다리를 놓았다. 지금껏 무심코 다리를 건너기만 했던 내가 징검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징검자리 놓기를 끝낸 우리는 풀꽃을 꺽어 물속에 던지며 놀았다. 내 손을 떠난 풀꽃은 낯가림이 심한 아이처럼 금방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기도 하고 하얀 거품을 삼키기도 하였다. 어릴적, 물에서 잃어버린 나의 고무신도 저렇게 모습을 감추었다.

 지금은 보문호에 물을 가두어 이름뿐인 강이 되었지만 내 고향엔 유난히 돌이 많은 북천과 수심이 깊다던 서천이 있었다. 강은 수심이 깊을수록 소리가 없다. 그건 말없는 사람의 속도 그렇다. 아이들이 주로 즐기고 찾던 강은 북천이었는데 강이래야 우리들의 정강이를 적실 정도여서 그 흐르는 물소리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로 들렸다. 그래서 우리는 돌부리에 부딪혀 위험하기는 했지만 북천과 더 친했는지도 모른다.

 북천은 삐쭉삐쭉하게 모가 난 칼돌이 많아 발이 베이기가 일쑤였다. 멱을 감다보면 미끄러져 신발이 벗겨지곤 했는데, 처음엔 종이배처럼 흘러가던 고무신이 징검다리가 있는 곳에서는 잠시 멈칫했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달려가보면 오히려 더 빠르게 떠 내려가 버렸다. 고무신은 다시 멈칫했다. 나는 또 달리고, 마침내 같이 놀던 친구들의 모습이 멀어졌다. 더는 달려가지 못해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 어쩌면 내 삶도 잡히지 않는 신발처럼 떠 내려 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강에 돌이 많다보니 징겅다리도 많았다. 그때 징검다리는 참 많은 역할을 했다. 강을 사이에 둔 연인들에겐 사랑의 가교였고, 어머니에게는 빨래터였다. 뿐만 아니라 보리타작이 끝날 무렵이면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강가로 데리고 나가 묵은 때를 씻겨주던 목욕터이기도 했다.

 동네에 큰 일이 있으면 금방 그 소식은 징검다리를 넘었다. 우리도 징검다리를 건너 이웃마을을 넘나 들었다. 그러다가 말다툼이 생기면 강의 양쪽에서 우우 소리를 내며 으름장을 놓았을 뿐 서로 누구도 선뜻 징검다리를 건너지 않았다. 그것은 이편의 자존심을 무너뜨리지 않고 저쪽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배려이며 미덕이다.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징검다리는 따스한 무언가를 이어주었다. 마음의 통함, 그 밑바닥에는 따뜻한 인정이 깔려 있었다.

 누가 놓았는지 왜 거기 놓여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인위적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고 강과 돌, 자연 그래로 인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다리라도 저절로 생긴 것은 없다. 사람이 사람을 위한 배려, 덕과 인정, 봉사의 마음은 물에서 건져 올린 사금처럼 귀한 것이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북천에도 크고 우람한 시멘트 다리가 생겼다. 때를 같이하여 우리들의 생활은 변하였다. 수도시설을 하면서 빨래터는 집안으로 옮겨졌고, 선생님은 더이상 우리를 강가로 데려가지 않았다. 우리의 생활은 강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떠나간 강의 풍경이 피폐해져 간다는 사실이었다. 깨진 병은 칼 돌보다 더 날카롭게 번뜩였고 물은 가장자리부터 회색의 이끼가 끼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떠내려 간 것은 신발 한 짝 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덕과 인심이 함께 떠내려갔다. 마음을 닫아버린 사람들은 징검다리의 소중함과 자연스러움을 잊어버렸다. 한 때 징검다리를 건너던 사람들은 그냥 쓸모 없는 돌이라 여기며 시멘트 다리를 건너는 것이었다.

  징검다리를 건너기 위해 옷자락을 여미고 자세를 가다듬는 모습이 그립다. 그 모습이 누구이건 상관없다. 그 모습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올리고 아버지 어머니를 떠올리고 내 형제 내 친구를 떠올린다.

 북천으로 돌아가고 싶다. 칼 돌들이 물살에 부대끼어 둥근돌이 되듯 세월의 물결에 씻겨 둥글어진 마음이고 싶다. 모천을 찾는 연어를 생각하며 나 또한 고향의 그 강가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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