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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A(투뿔에이)등급을 기대하며    
글쓴이 : 김단영    19-02-16 21:40    조회 : 4,819
   1++A(투뿔에이)등급을 기대하며(한국산문 18년12월).hwp (17.5K) [1] DATE : 2019-02-16 21:42:16

1++A(투뿔에이) 등급을 기대하며

김단영

 

  축산물 사료를 취급하다 보니 소 키우는 축주(畜主)를 자주 보게 된다. 연세 지긋한 손님이 찾아오셔서 사료를 주문하기에 전표를 끊어드렸다. 대금을 치르고 나서 커피를 한잔 달라고 했다. 다른 손님도 없고 해서 일손을 멈추고 믹스커피를 타서 대접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종이컵을 받아 쥐고 흐뭇한 웃음을 짓기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자랑을 쏟아낸다.

  “이번에 소를 다섯 마리 냈는데, 등급이 다아 잘 나왔어!”

  그러니까 기분이 좋을 수밖에. 다섯 마리를 한꺼번에 출하해보기도 처음인데, 이렇게 좋은 성적을 받은 것도 처음이라며 목청을 돋우었다. 나는 마침 기말시험을 치르고 성적이 뜨기를 기다리고 있는 늦깎이 학생이었기에 그 분의 자랑이 귓등으로 들리지 않았다.

  “등급이 어떻게 나왔는데요?”

  “아직 출하등급표가 정식으로 나오지는 않았는데, 세 마리가 투뿔(1++)이고 두 마리가 완뿔(1+)이야!”

  “우와, 등급이 정말 잘 나왔네요. 우리사료 계속 가져다 먹이시더니, 사료가 좋아서 그런 거 아니에요?”

  기분 좋게 축하도 해주면서 깨알 같은 사료홍보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래그래, 그렇지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라며 대거리를 해주었다.

  축주가 등급판정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등급이 곧 돈인 까닭이다. 등급에 따라 소 값이 몇 백만 원씩 뜀뛰기를 하기도 한다. 어린 송아지를 비육소로 길러내려면 노동력과 경비가 많이 든다. 등급판정은 그러한 축주의 사육능력을 평가해서 받는 성적표라 할 수 있다. 기대했던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축주가 허우룩해하기도 한다.

  학생에게 시험성적도 마찬가지다. 문창과 공부의 특성상 과제물이 많다보니 과제점수가 평점에 큰 영향을 끼친다. 나름 밤잠을 설쳐가며, 머리 싸매고 열심히 썼다 싶은데 평점이 낮게 나오면 속상하고 말구다. 단순히 내 점수가 몇 점인지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평점에 따라 장학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걸려 있거나, 혹은 낙제점수라서 재수강을 해야 하거나 졸업을 앞두고 이수학점을 채우지 못한다면 성적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초조해질 것이다. 소를 실어 보낸 후에 등급표를 기다리는 축주의 마음과 학기말 시험을 치르고 성적조회를 기다리는 학생의 마음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염소나 사슴도 같은 사료(TMR)를 먹이지만 등급제는 소에만 적용된다. 우리나라 소고기 등급의 종류는 육질과 육량으로 나누어진다. 육질에 따라 1++, 1+, 1, 2, 3등급으로 판정하며, 육량지수에 따라 A, B, C등급과 등외로 구분한다. 따라서 최고급 상품은 투플러스에이(1++A)'등급이다. 흔히 식육식당에서 투뿔이니 일등급이니 하는 표시제는 구이용에서 확인하는 정보다. 한국이나 일본은 소고기를 한입크기로 작게 잘라 불에 구워먹는 것을 선호한다.

  불에 구우면 지방이 많은 고기가 감칠맛이 나며 맛이 좋게 느껴지는 법이다. 맛있게 먹은 음식은 몸에 필요한 영양분으로 다 채워지고, 남는 지방은 몸에 축적된다. 사람의 지방은 뱃살로 늘어가는 반면 소는 등지방으로 간다고 한다. 사료를 많이 먹이고 계속해서 살을 찌워야 근육 구석구석 지방이 쌓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소의 등급이 단지 지방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육질의 개량은 어미 소와 아비소의 유전자도 중요하며, 축산환경도 소의 등급판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어떤 사료를 어떻게 먹이느냐하는 것이 가장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각 나라마다 소비자의 선호도에 따라 고기의 평가를 달리한다. 유럽에서는 큰 덩어리로 익힌 후 직접 칼로 잘라먹는 스테이크 문화가 발달했다. 그래서 연한 고기를 두툼하게 썰어서 살짝 덜 익혀 먹으면 육즙이 빠지지 않아 부드럽고 맛이 좋다. 미국에서는 8개 등급으로 구분하지만 현재는 프라임(Prime), 초이스(Choice), 셀렉트(Select) 세 가지 등급만 수입하고 있다.

  호주의 수입육은 연하다’, ‘매우 연하다’, ‘대단히 연하다3개로 구분할 뿐이다. 사료 관련업에 종사하기 전에는 소고기하면 그냥 다 같은 고기인줄 알았다. ‘국내산 소고기한우의 차이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지방함유량이 낮은 고기를 찾는 소비자도 늘고 있는 추세다. 건강을 위하여 혹은 환경문제를 염려하여 채식 위주로 섭취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지만 나는 아직까지 육류를 즐겨 먹는 편이다. 잘 구운 고기 한 점에, 얇게 썬 마늘 하나 올린 상추쌈을 입 안 가득 구겨 넣는 상상을 하면 행복해진다.

  축산관련업종에 근무하다보니 소는 죽어서 주인에게 등급을 남겨 주는구나싶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 할 텐데. 나를 성장시키는 건 나 자신이다. 나도 죽으면 나 자신에게 어떤 등급을 남겨주지 않을까? 사람을 소의 등급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사람의 몸매에 등급을 매긴다면 날씬하고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가 당연히 투플러스(1++)를 받을 테고, 나처럼 먹는 것만 좋아하고 운동하기 싫어해서 배둘레햄이 넉넉한 사람은 낮은 등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사람의 인생은 외모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건강미에서 더 나아가 내면적인 등급, 진정한 인간미에 대한 등급까지도 고려해봐야 할듯하다.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나? 얼마큼 남을 위해 베풀며 살았나? 사람의 일생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들여다볼 수 있다면 좋겠다. 선홍빛 바탕에 마블이 꽃처럼 피어나는 인생이라면 투 플러스를, 대리석 문양과 같은 아름다운 눈꽃 마블링을 기대하며 오늘도 자기 일에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엄지를 치켜 올리며 A를 달아주고 싶다.

  이번학기에는 시, 수필, 소설, 시나리오 등 다양한 창작 과제물을 써보았다. 수필과 소설은 괜찮은 점수를 받았고, 걱정했던 시()과목은 과제 점수는 낮았지만 평점은 좋은 편이었다. 이십여 일 동안 애면글면 작성했던 시나리오는 아쉽게도 나보다 잘 쓰는 학생이 많았던 모양이다.

  인생은 스토리가 있는 한 권의 책이라고 한다. 어느새 청년기를 다 보내고 인생 중반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의 나, 착실히 넘겨가던 마지막 페이지를 모두 넘기고, 언젠가 책장을 덮을 때가 온다면 그때, 내 인생의 등급도 투플러스에이(1++A)등급이기를 기대해본다.

-한국산문 2018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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