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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이별, 그리고 남겨진 것    
글쓴이 : 정민디    18-07-02 19:19    조회 : 4,619

           다시 이, 그리고 남겨진 것

                                                                                                                                                 정민디

  어느 날 서울의 아버지가 미국에 살던 나에게 전화를 했다. 약간의 돈을 보냈다고 말하고는 꺼이꺼이 우셨다. 아버지는 보고 싶은 안타까움을 울음으로, 돈으로 대신했다. 곧 부음을 받았다. 내가 미국에서 받은 그 전화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십 사년 전 7.

 남동생이 2002년 미국 이민 간 이후로 돌보지 못한 산소 주위는 무지막지하게 우거져 있었다. 이번에 동생은 마음먹고 시간을 냈다. 모처럼 형제들이 다 모였다. 시댁 산소를 정기적으로 찾는 여동생은 익숙한 솜씨로 가지를 쳐내며 길을 만든다. 낫만 있으면 온 산에 나무를 다 벨 기세였다. 산소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먼저 올라 간 남동생이 묘를 찾았다고 외친다. 숲을 헤치고 정신없이 들어가는 데 잠깐 사이 산모기들이 사람 피 냄새를 오래간만에 맡았는지 온몸을 죄 뜯어 놓았다.

 뒤이어 무덤을 개장 할 두 남자가 새로운 관과, 곡괭이와 삽을 들고 올라오고 있다. 쓸모없는 이천 평 선산 중앙에 찌부러진 묘 밑에 아버지가 외로이 누워 계셨다. 무덤 한 가운데 아카시아 나무 한 그루가 무심한 자손들 보란 듯 버티고 있다. 파 내려가니 먼저 관위에 덮었던 붉은 천이 다 삭아 반이 찢어져 나온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성인 나라 정자가 확실히 새겨져 있다. 아버지의 무덤이 틀림없다. 드디어 관 두껑이 열린다. 아버지는 옷을 다 벗으신 채 가지런히 뽀송뽀송하게 누워 계셨다. 생전에 깨끗한 성품대로 정갈하게 계셨다. 나는 아버지의 뼈에 살을 붙이고 옷을 입혀 드리고 살포시 껴안았다. 왜 이제야 왔냐고 하신다.

아버지! 아버지 진짜 뒤끝 있으세요. 아버지 돌아 가셨을 때 미국에서 오지 않았다고 여태 섭섭하셨어요? 그렇다고 이렇게 엽기적으로 나를 만나면 어떻게 해요. 옷도 안 입으시고요.” 아버지에게 투정을 했다.

 한 남자가 뼈를 추려 새 관에 사람 모양으로 맞춰 놓는다. 아버지의 틀니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머리 부분을 옮겨 놓는다. 모든 해골은 웃는 듯이 보인다. 아버지도 나를 보며 웃으신다. 일 하던 남자가 무심히,

뇌수술을 받고 돌아 가셨군요.” 한다. 나는 기어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버지, 그 때 얼마나 힘드셨어요. 내가 와서 우니 기분이 좀 풀리셨어요? 이제 노여움 푸시고 다시 편안히 가세요. 외롭게 계시지 말라고 우리가 사람 많은 곳으로 아버지 이사 시켜 드리러 왔어요.” 아버지에게 삼베로 된 새 옷을 입혀 드리고 화장장으로 향했다.

  황토로 만든 유골함이 좀 더 비쌌다. 습기가 덜 차서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화장을 한 아버지의 유골을 황토 함에 넣어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로 이장 할 산소가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아 이틀은 집에 계셔야 했다. 어머니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유골함을 받아 준비해 놓은 사진 옆에 놓았다. 그리고 소주를 한 잔 따르며 눈시울을 적신다.

  이 틀 후, 자유로를 달렸다. 서울에서 북쪽으로 통일로를 지나 임진각까지 뚫린 길이다. 미국의 프리웨이와 같은 자유로라는 이름이 친숙하다. 미국에서 프리라는 말을 자유라고 생각해 자유의 나라라서 도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생각 했다. 통행세를 안 내는 공짜도로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여기 자유로와는 뜻은 좀 다르지만 여하간 돈을 안 받는 것은 마찬 가지였다. 한국은 조금 속력을 낼 수 있는 곳은 가차 없이 돈을 받고 있잖은가. 왼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저 멀리 강화도가 보인다. 북쪽에서 뱃길로도 쉽게 올 수 있는 길이라서 그런지 철조망을 쭉 끼고 있었다. 그 철조망이 분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오른편 들녘에는 알이 실하게 꽉 찬 벼로 황금물결 이는 가을이었다.

 나도 망향의 절절함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한 발은 늘 태평양 바닷물에 적시고 있었다. 그러다 병이 깊어지면 오곤 했다. 하지만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실향한 이북 5도민들의 애통함은 내 처지와는 비할 바가 못 되리라. 자손들은 죽어서도 고향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할 부모님들을 생각하여 파주에 묘지공원을 조성했다. 어머니의 고향이 함경북도라서 그 묘지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자동차는 그 묘지공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앞자리에 앉은 남동생은 이틀 전 화장을 한 아버지의 유골을 꼭 껴안고 있다. 묘지공원은 이북5도가 따로 나뉘어져 있어 찾기도 아주 쉬웠다. 생사를 모르는 부모님들을 합동으로 제사 지낼 수 있는 묘단도 근사하게 만들어 놓았다. 묘지마다 조화를 꽂아 놓아 사시사철 울긋불긋 하겠다.

 그리움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생긴 찌꺼기가 아니던가. 아버지와 눈 맞추고 얘기하고, 웃고, 만지고, 느끼고, 밥을 같이 먹고 싶다. 내 앞에 아버지가 계셨으면 좋겠다.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느니 뭐니 하는 말 다 헛소리다. 생명이 유한한 게 서럽다. 하지만 삶이 이별을 전제로 하는 불가항력인 것을 어쩌랴. 아버지도 우리랑 헤어지기가 싫어 얼마나 안간힘을 쓰며 버티셨을까. 지금 내가 몸서리치게 버티는 것처럼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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