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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궁아, 미안해| 이영희    
글쓴이 : 웹지기    22-06-05 17:38    조회 : 9,991

 

  

자궁아미안해_회원신간.jpg


저자/ 이 영 희


올해로 육십 다섯이다.

지나고 보니 그래도 50대가 좋았다

살림살이 좀 정리되며 안정도 찾아, 세상이 제대로 보이고

글이 그나마 글 같았다.

단어가 빨리 떠오르고 판단도 빨라 쓸 말과 할 말을

걸러내기도 지금보다 수월했다.

 

그렇다면

40대가 훨씬 나은 것 아닐까.

그렇지 않다. 그때는 오욕칠정,

거품처럼 일어났었다. 이웃보다 잘 꾸미며 살고 싶었고

품위와 격조는 어설프면서도

여왕처럼 살고팠다. 불혹이 아닌 미혹.

이때도 글은 썼었지만, 서점에 나온

수많은 활자의 진실은 대담한데 나의 말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가 아닌

잔망스런 사실만 늘어놓는, 말하자면

가관이란 말이 맞다.

 

30대는 뭘 했나.

아이와 남편의 세계가 전부인 양

이런 게 여자의 일생인가 싶었다.

아들은 어렸었고 남편과는 삐걱대며

결혼에 대해 회의감. 그러면서 아이를

향한 무한사랑으로 어미로 한 남자의 아내로

지지고 볶는다는 말뜻을 경이롭게 절절하게 경험했다.

 

그럼 20대로 돌아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지만 썩 가고 싶지 않다.

목련처럼 산수유처럼, 벚나무처럼

온몸이 달큰함으로 물이 올랐지만

청춘이라는 멋들어진 어감보단

숫자만 풋풋했다. 인생에 대해, 앞날에 대해

심히 골똘해지지만 정답 없는 문제집만 풀고 풀었다.

 

10대 때는 표준전과처럼

고 나이의 표준대로 눈치코치도 늘어가고

부모님에 대한 반항과 내 안에 불확실한

불안이 묘하게 뒤틀리며 매캐한 연기를

피워댔다. 매사에 불만이며 표출하자니

구실은 빈약했다. 몸은 자꾸만 허물을 벗어

용모는 뚜렷해지는데 몸의 변화에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 정신세계는 가만히 있자니

원인 없는 열불이 나고, 그래서 친구들에게

올인하며 위안을 얻었다. 집에선 침묵하고

밖에서만 수다스러워지는 시절.

 

그전은 어땠나 5,6,7,8,9

그야말로 본능에 충실한 때였지 싶다.

어른들이 들려주는 말과 뜻을 하나하나 익혀가며

학교라는 작은 사회, 그 놀이터에서 자라는 내 키만큼

몸무게만큼의 세계가 아마도

날마다 해마다 신세계였을 것이다.

 

만약에, 만약에

태어나기 전으로 갈 수 있다면 그곳으로

가고 싶다.

카오스, 카오스로.



차례

추천사_ 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학교 인문대학장)

책을 펴내며

/1 

된장국과 모차르트

어머니와 각설이 타령

무소음 청소부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

그때 그 달의 미소

봄이 오면

그러나 확실한 집

비 오는 날

/2

몰입의 순간은 깨지고

색소폰과 달큰한 숨소리

그러면 안 돼요

친절하지만 얄짤없는

그곳에 있지 않아요

방하착放下着

고기 삶는 그 국물에

외롭게 굳은 등을 토닥여주자

인간아 아, 인간아

/3 

자궁아, 미안해

나쁜 세 남자

코끼리 등에 올라타기

아직 괜찮다

, 이런 사람이야

그 소녀는 어디로 갔을까

재미없는 여자

구토

쉽지 않다

완경

예순네 번째 시월

식은 커피 

/4 

내 안에 사는 괴물

햅타포드와 겨울 물고기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구원은 어디에

노자와 고문진보古文眞寶

목걸이와 양반전

말에는 장식이 없어야 한다

수제비와 글제비

 

 

추천사

 이영희의 수필은 스스로에게는 삶의 고비마다 찾아가는 친정집처럼 위안의 처소이자 삶의 충전소로 존재하고, 독자들에게는 읽히게/또 보고 싶게/그리고 생각이 돌게하는 삶의 이야기로 펼쳐져간다. 낱낱의 원석(原石)을 영롱한 보석으로 하나하나 바꾸어내는 힘으로 작가는 그러한 자신만의 기억과 고백의 과정을 차근하게 수행해간다. 그때마다 문질빈빈(文質彬彬)의 아름다움이 번져 나오는 것이 말하자면 이영희 글쓰기의 우뚝함이다.

 

살아오면서 제 모습을 잃지 않게해주신 아버지와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잡아주신 어머니는 지금도 먼 기억 속에서 외딸의 등을 따듯하게 토닥여주신다. 그분들의 된장국과 모차르트 이미지는, 우리 고전과 서양 고전처럼, 작가에게 언제나 든든한 균형으로 계셨을 것이다. “나보다 몇 배의 인내로 여기까지왔을 남편, 군 면회 때 환하게 웃으며 뛰어나왔던 그 길을 들어갈 땐 아주 천천히걸어가던 아들을 향한 작가의 사랑은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통과 설움의 순간을 가뜬하게 넘어서게 해주었을 것이다.

 

이제 이영희의 수필은 천천히 책, 영화, 인생, 종교, 정치 이야기로 확장되면서 우리에게 고유하고 깊은 울림과 떨림을 건네기 시작한다. 가끔씩 찾아오는 휴식처럼, 책 사이사이에 배치된 시적 형식의 짧은 글들도 더없는 윤기와 온기를 선사한다. “보이는 만큼만, 느끼는 만큼만. 어깨에 힘주지 말고들려준 작가 이영희의 이러한 방하착(放下着)의 언어가 아름답고 은은하게 우리의 귀를 울린다. 만만치 않았을 슬픔의 시간을 고전적 자기 긍정의 힘으로 옮기면서 한 자 한 자 필사해간 이 책은, 그 점에서 이영희만의 영혼의 자서전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인문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