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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움직인 명작의 첫 문장 (종로반)    
글쓴이 : 봉혜선    20-08-06 19:48    조회 : 5,313

문화인문학실전수필(7. 23, )

-나를 움직인 명작의 첫 문장(종로반)

 

 

1. 명작의 첫머리

 

왜 새삼 우리가 사랑하는 명작의 첫 구절인가? 명작은 처음부터 멋있다. 예외 없이.

다만 시점이 현대에 가까울수록 이야기를 시작하는 연유나 동기, 인물의 소개, 앞으로 벌어질 내용 요약, 시대적 배경 묘사는 하지 않고 사건 자체로 직진하는 경향이 강하다. 12~15매 분량인 수필에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이 대목에서 철학자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론이 생각나다니 웬일이니! 사태 자체로(Zu den Sachen selbst)!"

<<백경>>-허만 멜빌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주오.

 

<<날개>>-이상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동백꽃>>-김유정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쫓기었다.

 

<<시간의 역사>>-스티븐 호킹

잘 알려진 과학자 한 분이 언젠가 대중에게 천문학에 대해 강의를 하였다.

 

<<이방인>>-카뮈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엉클 톰스 캐빈>>-스토우

2월의 어느 쌀쌀한 오후, 켄터키주 P마을에 있는 잘 꾸며진 식당에 두 신사가 포도주를 마시며 앉아 있다.

 

<<죄와 벌>>-도스토예프스키

7월 초의 뜨거운 오후가 저물어 갈 무렵 한 젊은이가 S구역에 있는 그의 다락방을 나와 천천히 어딘가 머뭇거리는 듯 K다리 쪽을 향하여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안나 카레니나>>-톨스토이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눈 먼 자들의 도시>>-사라마구

노란 불이 들어왔다. 차 두 대가 빨간 불에 걸리지 않으려고 가속으로 내달았다.

 

*그밖에도 참고하면 좋은 작품들이 무수히 많다. <<파우스트>> <<변신>> <<노인과 바다>> <<작은 아씨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멋진 신세계>> <<나는 전설이다>> <<서울, 1963, 겨울>>... 작가 하성란은 <<당신의 첫 문장>>을 간추리고 감상을 적어 책 한 권을 엮어냈다.

 

 

2. 합평

 

1)엄마와 노래-봉혜선

 

친인(親人)에 대한 글을 신파조가 아니면서 마음에 와 닿게 녹여내는 일은 녹록치 않다. 존칭어는 생략함(근데 시부모는?). 서두에 대한 공부 중이어서 첫 문단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비문 주의. 화소 간 연결 고리에도 신경을 써야함.

 

2)새는 날아가고-윤기정

 

비정한 인간의 몰인정과 애정으로 돌보는 새의 세계 본능에 대한 비교가 병치되어 작가 특유의 상징성이 드러났다. 세밀 묘사가 두드러진다. 다만 2, 3문단에서 정황 설명이 충분치 않아 혼선을 빚었다. 고심하며 쓴 과정을 설명으로 하는 모습을 보며 글쓰기의 어려움 실감했다.

 

3. 동정

 

건물을 나서자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다...’(<<설국>> 패러디)

어쩌면 작품의 제목만으로도 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폭우가 안개처럼 앞을 가리는 오후의 바깥.


봉혜선   20-08-06 19:59
    
지금까지 끄적이며 글이라고 이름 붙여 놨던 것들의 처음을 보다가 책꽂이에 꽂힌 책들의 처음을 들춰 보았다. 광고처럼 짜릿하란 말인가. 첫 키스의 느낌처럼 얼떨떨하며 기습적이고 불 같아야 하는가. 처음 가는 길처럼 듬더듬더 해야 하는가.
  화소마다 앞장을 세워보기도 하며  글만의 처음을 개간해 나가야 한다.  소설이나 시와는 다른 수필의 세계가 있을 거다. 처음  부터. . .
윤기정   20-08-07 01:46
    
봉작가. 수고 많았어요.
 첫 문장. 중요한 만큼 어렵지요.  첫 문장이 잘 잡히면(창작이 아니라 떠도는 그 무엇을 잡는 것 같은 심정) 글도 비교적  잘 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문장인지 문단인지 '설국'의 앞 부분이 생각나네요. 기차 유리창에 비친 여인의 모습을 그린 장면이요.(맞나? 읽은 지 오래되어서)
고생하셨는데, '날개'와 '동백꽃'은 두 번 등장하네요. '옥의 티'
김순자   20-08-11 18:36
    
글쓰기는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 한다. 이렇게 쓰는게 글이 될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반문하며 써온지 벌써 여러해이다.  다른 문우들의 섬세하고 정확한 표현,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장들을 구사해 놓았을때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문학적인 표현? 하루아침에 이룰수는 없는 일, 다양하게 경험한 이야기를  글감으로 쓰고 버티고 참아내자. 언제나 처럼 변함없이 꾸준하게~~~ 코로나도 긴 장마에도 무탈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