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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를 범했다    
글쓴이 : 장지욱    16-02-22 12:52    조회 : 6,714
아내를 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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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 욱
 
나와 집사람은 같이 목욕하는 것을 좋아한다. 샤워는 각자 하지만 한 달에 한 두 번은 꼭 같이 목욕을 한다. 결혼 한 지 21년이지만 신혼 때부터 우리는 같이 목욕하는 것을 좋아했다. 신혼 때에는 부끄러워 감추고 가리고 뒤돌아서 씻던 사람이 이제는 보여줌에 거리낌이 없다. 젊을 때의 보송보송하고 야들야들한 살들이 조금 늘어지고 퍽퍽해졌지만 낯설지 않은 익숙한 살이라 반갑고 손이 닿으면 정겹다. 좁은 탕 속에 같이 들어가 있으면 집사람은 내 발바닥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발가락 사이를 지나 발뒤꿈치를 비비며 한 달 동안 빌붙어 살아온 찌꺼기와 굳은살들을 떼어 놓으며 아내는 뜨거운 김에 발그레 미소 지으며 웃는다. 나는 일하느라 알이 배긴 아내의 종아리를 만지작거리며 장난에 화답한다. 물속에서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부풀어 오른 쓸모없는 껍질을 벗기며 탈피의 시원함을 만끽한다. 마지막으로 넓은 등만은 내 손이 닿지 않는 불모지라 온전히 집사람에게 맡겨 손이 지나가는 곳에 신경을 집중하며 시원하게 쓸려가는 살의 기분을 느낀다. 시원하다. 아내의 손길이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며 쾌락에 빠지게 한다. 내가 원하는 곳을 꼭 집어 쓸어주는 손에 목욕은 절정에 이르고 우리 부부는 거품 비누로 새살의 매끈함을 즐긴다.
양로원은 스스로 거동이 가능하신 분들이 가는 곳이지만 요양원은 환자 분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특히 우리가 운영하는 곳은 중증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임종을 앞둔 분들이 많다. 아내는 아이들처럼 변해버린 어르신들의 비위를 잘 맞추고 투정에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한다. 대변도 어르신이 민망하지 않도록 웃으며 치워주고 목욕도 어르신들이 시원하도록 잘 씻겨준다. 오래 누워 가렵고 뭉친 곳을 마사지하듯이 씻어 드리면 말 못하는 어르신들의 신음이 아내의 손을 타고 욕실에 넘실거렸다. 밤에도 아내가 없으면 불안해하고 무슨 일이든지 아내를 찾아서 집보다는 요양원에서 지내는 것이 요즘 아내의 일상이 되었다.( 연을 나누는 것을 연습하라, 연을 바꾸는 연습)
자기야, 오늘도 못 들어가.”
이유가 뻔한 통보에 이제는 새로울 것이 없다. 아내가 집에 들어온 것이 벌써 1주일 전, 집안일은 온전히 내 몫이고 아이들 뒷바라지도 혼자 감당하고 있다. 요리는 아내보다 더 잘하니 걱정은 없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진공청소기와 대걸레로 닦으면 된다. 설거지는 아이들 셋과 가위바위보로 결정한다. 아내가 하는 것보다 깨끗할 수는 없지만 손님이 와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살림을 하고 있다. 요양원 사무 보는 일과 집안일을 맡아서 아내의 빈자리를 잘 메워 나가고 있지만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것이 있다. 아내가 등을 밀어 주지 못한 불모지는 샤워를 해도 시원하게 닦을 수 없다. 위로도 가보고 아래로 가보아도 불모지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땅이다. 등판 어느 곳에 자리 잡고 쩍 갈라지는 논바닥을 곡괭이질 하는 것 같은 가려움이 이성을 상실하게 한다. 가로수와 전봇대를 등에 대고 비비고 효자손으로 긁어도 쾌락에 빠지지 못 한다. 젊은 아버지의 위풍당당한 풍채를 기억하는 다 큰 아들들에게 중년의 뱃살이 낯설어 같이 목욕하자는 말이 어색하다. 굽어가는 등을 이제 성년이 된 아들에게 맡기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이다. 아내 손에서 쾌락을 맛보는 어르신들에게 질투가 났다. 아내를 빼앗기고 만 것 같았다. 매일 아내 손을 타는 어르신들이 즐거워할 때 나는 손 없는 신세가 되었다. 참다못해 아내에게 협박과 반항을 해 본다.
나 집 나간다. 요양원이 중요해 가정이 중요해! 오늘 안 들어오면 알아서 해!”
화를 내고 협박하지만 승자는 언제나 아내다. 아내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개띠의 본능이 꿈틀거려 신발을 벗기 전에 안아주고 짐을 들어주고 온갖 아양을 헐떡이며 떨고 있다.
벼르고 조르다가 협박해서 드디어 같이 목욕하는 날이었다. 몇 달 만에 보는 익숙한 살들이 집 나간 탕자가 돌아와 안기는 것 같이 벅찬 환희를 가져왔다. 아내의 손이 등판을 쓸어 갈 때 몽롱한 쾌락에 빠져든다. 쌓아둔 감정의 찌꺼기를 돌돌 말아 하수구에 떠내려 보내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자기야, 시원하다. 히히.”
어이구 철딱서니 없이.”
그 밤, 304호 어르신이 89년을 살다가 세상에 이별을 고했다. 3차 뇌출혈로 인한 갑작스러운 임종에 가족도 보호사도 지켜보지 못하고 홀로 임종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나는 아내를 범하고 있었다. 나는 304호 어르신이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이어가며 의지하던 아내를 빼앗아 질투에 사로잡힌 등판에 쾌락을 주었다. 망자의 손을 잡아주는 손이 내 등판에 붙어 있었다.
아내는 생명의 기운이 얼마 남지 않은 어르신들의 얇은 등판을 밀고 있다. 살이 없어 가죽이 밀려올라 갈 때마다 어르신들은 신음소리를 낸다. 아내 손을 따라 이리저리 쏠리는 가죽들이 시원하다. 시원하다.’ 신음을 할 때, 파렴치범인 나는 아내의 손길을 생각하며 범하고 싶은 유혹을 이기고 있다.

문영일   16-02-24 12:18
    
도발적인 제목이 우선 좋습니다.
'참 다른 당신'과 한 욕조에서 함께 목욕을 하시다니 예외이군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평생 못 해 봅니다.
한 참 운동하여 근육을 자랑하고 싶을 때
 "여보 수건 좀-"하고 소리 질렀더니
문은 애기 주먹 들어갈 만큼 열고 수건(욕탕에도 있었지만)을 흔들더군요.
김 샜지요.
 '참 다른 당신'은  '참 좋은 당신'입니다.
장 선생님의 다음 글을 기대하며...
장지욱   16-02-25 18:59
    
신혼 때 아직 대학생이라 단칸 방에 욕실이 없어 부엌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놓고 씻었지요.  혼자보다는 둘이 같이 씻어야 물도 덜 데우게되고 부엌이다보니 찬바람을 막아주는 온기가 필요하고 그래서 시작된 같이하는 목욕이 이제는 밤마다 생각나는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어르신들께 빼앗긴 아내는 오늘도 저 혼자 러브레터를 쓰게 만드네요 겨울의 긴 밤이 저를 작가로 만듭니다. 헤헤
이민옥   16-12-25 23:15
    
아내에게 러브레터를 쓰는 남편...부럽군요.
우리남편은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라...
지욱님 글을 읽으니,
나도 남편에게 러브레터를 써볼까 생각이 드는데요 .
사랑이 가득한 글...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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