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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룩진 낭만    
글쓴이 : 오영임    22-05-21 21:53    조회 : 1,545

얼룩진 낭만

 

                                                                                                   오영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톨레도의 대성당.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고딕 양식의 성당을 짓기 시작하였고 증축과 개축을 반복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단다, 현재는 스페인 가톨릭의 총본산이 되었다는 가이드의 익숙한 설명이 시작되어 모두가 귀 기울이고 있던 때에 핸드폰이 울려 열어보니 큰아이였다. 불길한 예감에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5개월 전에 예약한 이번 여행은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3개국의 낭만이 내려앉은 푸른 바다 네르하’ 12일간의 일정이었다.

치매 3등급의 93세이신 어머니가 염려되긴 했지만 요양보호사에게 부탁하고, 작은 애가 휴가 중이어서 결정할 수 있었다.

여행은 계획하고 준비하는 기간의 설렘이 즐겁다. 인천에서 카타르 항공으로 밤에 출발하여 도하공항까지 10시간 후 도착, 2시간의 기다림으로 환승하여 도하에서 스페인 수도인 마드리드로 7시간을 날아가니 현지시간은 12:45분이었다. 가이드의 안내로 마요르 광장에서 펠리페 3세의 기마상을 배경으로 한 컷 찍고, 산 마구엘 시장, 프라도 미술관, 솔 광장을 관람하고 피곤한 몸으로 숙소에 들었다.

이틀이 지났다. 3일째 마드리드에서 살라망카로 이동하여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는 톨레도에 도착하여 시내를 둘러보고 대성당에 들어왔는데 비보가 날아든 것이다.

엄마, 할머니가 소파에서 미끄러져 119로 종합병원에 입원하셨어요,”

골반을 다쳐 수술하실 수도 있다고 해요

무섭다고 울먹이며 얘기하는 큰애의 소식에 온몸에 기운이 빠지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상황도 모른 채 안내자의 설명에 빠져있는 남편을 불러 얘기하니 당장 돌아가야 한다고 서두르며 가이드와 상의를 하니 지금 가도 비행기 타기는 어렵고 매일 숙소가 다른 장거리 여행이라 자신들이 도와줄 수도 없다고 얘기하며 가지 말라고 붙들었다. 진퇴양난에 조바심치는 내게 남편은 하는 수 없으니 여기서 이탈하지 말고 따라가자고 말했다. 보호자도 없이 많이 놀라셨을 어머니와 큰일을 결정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애들에게 죄송함과 미안함이 겹쳐져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의무과 근무 경력을 가진 남동생에게 어머니 상태와 치료 방향을 부탁하고, 요양보호사에게도 간병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니, 요양보호사는 오히려 제대로 돌봐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몸을 낮추며 미안해했다. 우리가 집에 있었더라도 생길 수 있는 일이니 나무랄 수 없었다.

27명의 여행객은 톨레도를 떠나 세르반테스의 소설돈키호테에 등장하는 붉은색 지붕이 이색적인 콘수에그라 풍차마을의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하고 포르투갈 성모 발현지로 유명한 파티마로 향했다.

저녁 식사 후, 바실리카 대성당 앞 광장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촛불을 들고 성모상을 받들어 행진하는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서울 성내동 유치원 원장 내외분께서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다고 위로하시며 행진에 동참해 주셔서 간절한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4일째 어머니께서는 다행히도 골반에 금이 간 상태라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움직이지 않고 한 달 이상 누워계셔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낯선 입원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액을 거부하며 주사침을 빼내면서 집에 가겠다고 하시어 양손을 묶었다고 했다. 이 병원은 병실마다 전담 간병인을 두고 있어 요양보호사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틀 밤을 걱정으로 병원에서 지낸 큰애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일주일 입원 후 동생이 요양병원으로 모신다는 연락을 해왔다. 근처에 있는 요양병원에 나와 친분이 두터운 직원과 상의하여 입원하도록 했다.

그동안에 우리는 유럽 대륙의 서쪽 땅 끝 마을,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까보다로까, 다육 식물이 널려있던 곳에서 리스본을 거쳐 세비아로 스페인 남부 론다에서 타리파로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아프리카 북부 항구도시 탕헤르의 모로코까지 왔다. 카사블랑카를 지나 하산모스크 앞 모하메드 5세 광장에서 수서에 사는 친한 형님을 만나 얼싸안고 환호했으며, 세계 최대의 미로라고 알려진 메디나에서 한국어를 구사하는 알람미 안내자를 만나 손뼉을 쳤다.

10일째 바르셀로나로 들어와 가우디의 걸작으로 유명한 성가족 성당의 웅장함과 외관의 조각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 1882년에 시작한 공사가 아직도 진행 중임에 놀랐다.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은 구엘 공원과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몬세라트(수도원)의 절경을 감상하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바르셀로나 하면 1992년 마라톤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황영조 선수가 떠올라 그가 사투를 벌였던 몬주익 언덕을 보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다. 관광명소마다 줄지어 다니는 우리나라 관광객들로 여기가 스페인인가? 하고 의문이 들 정도였다. 7시간의 시차를 가진 대륙에서의 여행은 많은 것을 보고 들었으나 머릿속이 복잡하여 남아있는 감정의 느낌은 별로 없다.

집으로 돌아와 요양병원으로 갔다. 그새 어머니는 작은 체구가 더 작아졌고, 간병인에게 몸을 의탁한 채 침대에 누워 남편을 보더니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는 알아보지 못하셨다. 간병인이 남편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으니,

내 남편

하셨다.

마음고생 심했던 삼 남매는 아빠 엄마의 출현에 안심되는지 출입이 뜸해졌고, 둘째는 자식이 하나이면 이럴 때 혼자서 힘들겠다며 하나 더 낳겠다고 말해 좋은 생각이라고 부추겨주었다.

어머니는 거동을 못하시고 누워만 계시니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갔다. 수액을 넣고 연명을 위해 고가의 영양제를 투여하면 눈이 또렷해지다 이내 흐려지셨다. 의사가 비위 관 삽입을 권했다. 솔깃해하는 남편에게 이건 환자에게 고통이라며 내가 강하게 반대했다. 콧줄 끼고 손발 묶인 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환자가 되는 건 동의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런 생명 연장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은 영양제에 어느 땐 산소에 의지하며 3개월을 버티다 말을 하지 못하더니, 새벽에 전화가 와 달려갔으나 어머님은 이미 눈을 감으신 상태였다.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던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불렀다.

자식이 둘은 되어야 한다고 했던 작은 애는 그때의 절박함은 까맣게 잊어버렸나?

여섯 살 손자의 재롱에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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