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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은 무엇인가    
글쓴이 : 김늘    22-01-26 00:31    조회 : 153
   길은 무엇인가.hwpx (76.6K) [0] DATE : 2022-01-26 00:31:25

길은 무엇인가

김늘(김혜정)

  화장실에 새 수건이 걸렸다. 아기 피부처럼 보드랍고 엄마 품속처럼 포근하다. 때 타지 않은 연 노란색은 천연 그대로다. 세월이 지나면 그 부드러움과 포근함이 사라져간다. 고운 색이던 본래 색과 포근함이 사라진 채 까칠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 그때가 되면 발 닦는 용으로 사용된다. 그러다가 집 안 구석구석 가장 더러운 곳의 까만 먼지를 닦아 내며 맡은 소임을 다한다.

  어릴 때 내가 쓴 수건은 이불 쌌던 홑청이나 면 헝겊을 자르고 가장자리를 감침질한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부모님이 개업식 답례품이나 기념품으로 받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수건을 산 기억은 없는데 서랍마다 가득 차 있다. 한올 한올 둥글고 아주 작은 방울들이 모여 포근함을 더한다. 그 작은 방울들로 장미나 다른 꽃무늬 또는 사방무늬를 만들어 모양을 예쁘게 한다. 회갑연, 첫돌 기념, 회사 창립기념일 등이 새겨진 기념일의 날짜나 글귀들은 그 가정의 역사를 말해 준다. 요즘은 밍크처럼 부드러운 면에 기념 글귀는 수를 놓아 품위를 높인다. 색상은 흰색, 미색, 분홍색 등 흐리고 환한 색만 있었는데 요즘은 진보라, 회색, 감색 등이 나온다. 때가 타지 않아 보이니 이런 색을 선호하게 된다.

    20159월 교장연수 기념이라고 프린트된 다이아몬드 사방 무늬 수건이 화장실에 걸렸다. 어느새 얇아지고 까슬까슬하며 연 노란색은 황토색으로 변해있다. 그것으로 손을 닦다가 이제는 발걸레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불현듯 검버섯 피고 까칠했던 엄마의 손이 생각났다.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성대한 회갑 잔치를 차려 드렸다. 이듬해 2월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몇 달의 병원 치료와 재활에도 쉽게 낫지 않아 오른쪽을 잘 못 쓰는 반신불수가 되었다. 왼손으로 수저를 어색하게 드는 것이 익숙해질 무렵 육십 평생 살던 고향 청주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하였다. 교사 생활을 하던 딸이 도 전출로 학교를 옮겼기 때문이다. 생소하고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다. 사춘기 중학생 딸들은 새로운 학교에서 친구들과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나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김포에 발령이 나서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철모르는 유치원생 막내딸만이 우리 집의 웃음꽃이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불편한 몸으로 가사 일을 많이 도와주셨다. 무엇보다도 빨래는 꼭 애벌빨래를 한 후 세탁기에 넣었다. 빨래를 모아서 했으면 좋겠는데 거의 매일 하니 손은 까칠해지고 검버섯이 피어났으며 집게손가락 뼈가 휘어 비뚤어져 있었다. 그 어눌한 손으로 중학생 손녀들의 교복과 사위 와이셔츠를 다림질하다 여기저기 데인 상처가 나기도 했다. 앉은뱅이걸음으로 거실과 아이들 방을 닦고 청소하였다. 어질러진 아이들 방을 정리해 주는 것도 엄마 몫이었다.

    기념 수건을 받았을 때는 연노랑 고운 색이었으며 도톰함이 부드러움과 포근함을 더 했었다. 엄마에게도 이런 고운 시절이 있었다. 젊은 시절 사진 속 엄마는 이목구비가 선명한 참 고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집착이 더 심해졌을까. 의처증이 심한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행하는 폭력은 우리 모녀에게 두려움과 고통이었다. 폭력에 기절하며 쓰러진 엄마의 손을 주무르며 울던 밤, 날 안고 말없이 울기만 하던 엄마를 기억한다. 엄마 손을 주무를 때 다른 한쪽은 사촌오빠가 주물렀다. 다음날 내가 주무르는 것이 좋았다고 말해서 핏줄의 끈끈함을 느끼게도 했다. 요즘 같아서는 이혼이나 가출을 생각했을 법한데 그런 형편에서도 굳건히 가정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딸 하나 바라보는 마음에서였으리라.

    기념 수건이 발걸레로 쓰이도록 세월이 흘렀다. 20여 년 불편한 거동으로 지내던 엄마는 갑자기 알 수 없는 바이러스의 침투로 중환자실에서 투석하며 45일 입원하였다. 면회 시 만졌던 손은 차가웠다. 손끝과 발끝은 까슬해진 수건처럼 까맣게 죽어가고 있었다. 한 손은 딸인 내가 주무르고 다른 손과 발은 함께 간 손녀들이 주물렀다. 힘없이 주물러주는 대로 맡기고 있던 엄마는 한마디 말도 없이 천국으로 가셨다.

  요즈음은 내가 무릎이 아파서 앉은뱅이걸음으로 이곳저곳을 청소한다. 그럴 때면 생전의 엄마 모습이 생각나 더 그리워진다. 일주일에 두 번 시집간 딸을 도와주러 간다. 직장 생활 하기에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손주 봐주고 청소도 하고 저녁밥도 같이 지어 먹는다. 내가 받은 사랑만큼 자식에게 해 보려 해도 엄마가 나를 위해 희생하신 만큼은 따라가지 못하겠다. 내 손도 엄마 손처럼 거칠고 검버섯이 피도록 늙어가겠지. 비록 색이 바래고 까슬까슬해져도 포근한 엄마의 품은 영원하다. 발 닦는 용으로 쓰이던 것이 온갖 지저분함과 더러움을 안은 채 그 소임을 다 하는 것을 보며 딸을 위해, 가족을 위해 희생하다가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한 엄마를 생각한다. 수건의 일생 위로 엄마의 일생이 포개어지니 새삼 모든 만물에 감사하게 된다. 부수기모 몰신불태 (復守其母 沒身不殆) ‘어머니인 도를 잘 지키는 사람은 평생 생명력이 고갈되지 않는다.’<<도덕경>> 말씀을 마음에 새겨본다.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기득기모 이지기자 기지기자 부수기모 몰신불태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온 세상 만물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고, 그 하나의 근원은 만물의 어머니라 한다.

    만약 어머니를 안다면 그 지식도 알 수 있으리라. 자식인 세상 문물을 경험하여 안 다음,

    다시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 어머니인 도를 잘 지키는 사람은 평생 생명력이 고갈되지 않는다.<<도덕경 52>>

    문주란이 불렀던 <동숙의 노래>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엄마는 이름도 동숙이라는 가명을 쓰셨다.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마음...” 지난 추석에는 엄마의 산소에 가서 그 노래를 하모니카로 들려드렸다.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니 엄마가 환하게 미소 짓는 듯하다. 새 수건의 포근함이 다시 내게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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