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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못 이룬 밤    
글쓴이 : 김늘    21-12-28 22:26    조회 : 1,320
   잠 못 이룬 밤.hwp (86.0K) [0] DATE : 2021-12-28 22:26:33

잠 못 이룬 밤

김늘

  

   학년 말 2월이 되면 학교는 신장개업하는 가게나 오픈을 앞둔 백화점처럼 바쁘다. 재학생들의 진급을 위한 업무와 교실 정비, 신입생 입학 준비, 새 학년 교육과정 계획 수립 등의 일들이 있다. 그런 가운데 꼭 해야 할 일이 학교운영위원회 회의인데 이 회의에서 심의를 거쳐야만 새 학년의 모든 교육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여러 안건 중에 급식실 운영 계획 심의건 안건이 있는데 그 안에 급식실 조리원들의 급식비 징수 건은 예민한 안건이다. 그동안 급식 조리원의 급량비를 다른 공무직보다 적게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은 무상으로 급식을 하였고 누구도 무어라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급식 공무직 노조에서는 단체교섭을 통하여 급량비 인상을 추진하였고 이것이 타결되어 2018년부터 급식 조리원들의 급량비가 다른 공무직과 같이 인상되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급식비를 징수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운영위원회 결의로 학교장이 결정하라는 것이 교육청 방침이 있었고 우리 학교 운영위원회에서는 급식비를 징수하기로 결의를 하였다. 학생 수 감소로 학생들의 급식비로 조리원들까지 먹게 되면 학생들 급식의 양과 질이 떨어지고 타격이 있을 것이 우려되었다. 같은 급량비를 받으며 돈을 내고 먹는 공무직원과 공으로 먹는 급식실 조리원과의 형평성이 맞지 않으며 서로 간에 위화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염려되었고 무엇보다 이것은 원칙에 어긋난다고 위원들은 생각했다.

   신학기를 시작한 3월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는 마찬가지이며 공문도 많이 오는 데 위법 급식비 징수 철회를 요청하는 공문이 학교장 앞으로 왔다. 19년도 작년과 같은 생각으로 급식비 징수가 결정되었다. 급식실 조리원들은 급식비를 안 내려고 도시락을 싸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조에서는 이것이 위법이므로 철회를 321일까지 요구했고 이행되지 않을 시 학교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할 것이며 학교의 부조리를 고발하겠다는 협박의 공문을 보낸 것이다. 급식 공무직 노조위원장의 결재가 난 것도 아니고 누군지 직함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의 이름만 쓰인 허술한 공문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학교 급식실 조리원들이 너무 열심히 일을 잘해주어서 인정상으로는 나도 200% 무상급식을 해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급량비를 다른 사람들보다 적게 받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급량비를 받으면서, 그 외 처우 개선비가 지급되어 여러 가지로 처우가 개선되었다고 보는데 급식을 무상으로 먹겠다고 하는 것은 이중의 혜택을 요구하는 것이고 이것은 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이 든다. 이들이 무상을 요구하는 이유는 이웃 학교00200여 개 학교 중 12곳만 징수 결의함와의 형평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형평성은 다른 학교 급식 조리원과 따질 것이 아니라 같은 급량비를 받는 다른 공무직원과 따져야 하는 것 아닌가

    붉은 장미가 담장을 휘감아 돌아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5월이 되자 비정규지 노조에서 면담을 요청하였다. 어느 날 00 노조 글씨가 쓰인 분홍색 조끼를 입은 젊은 여성 노조 임원 2명과 우리 측에서는 나를 포함하여 행정실장, 운영위원장이 같이 자리를 했다. 심문하듯 그동안의 경과를 말씀해 달라고 하기에 그들에게 우리가 급식비를 징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학생 인원이 줄어들고 다른 공무직원들과의 형평성 등을 말하였다. 그들과 싸우고 싶지 않아서 마지막엔 운영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입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근로조건에 무상급식이 되어 있으므로.” 라고 그들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행정실장이 근로조건에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말 끊지 마세요. 손가락질하지 마세요라며 언성을 높였다. 순간 당황한 우리는 아무 말 못 하고 그들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을 처음 겪어보는 순둥이 실장과 교장이다. 나는 애초 교섭할 때 이문제를 마무리하지 못한 노조의 책임도 있다. 다시 교섭하게 되면 이 문제를 확실히 짚어달라. 면담했다고 징수를 철회할 수는 없으므로 올해는 결정된 대로 가겠다라고 말하여 마무리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후회되는 것이 있었다. 실장에게 말 끊었다고 큰소리했을 때 내가 나서서 싸우러 왔느냐 이런 식이면 면담 필요 없다라고 나도 강하게 말하지 못한 것, 그리고 원칙을 무너뜨려 자기 이익만 구하는 노조가 되지 말고 더 크게 보고 원칙과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구현을 위해 일하는 노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해야 했다. 무식하고 용감한 것이 아니라 무식하고 용감하지도 못했던 내가 너무 부끄럽게 후회되었고 좀 더 깊이 공부하고 필요할 때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도록 내면을 더 성숙시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누구나 혜택을 누리려고만 하지 의무를 하지 않으려는 요즈음의 국민 정서가 문제이다. 당장 나만 혜택을 누리면 된다는 이기적 생각은 앞으로 다음 세대를 이어갈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나라 발전에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공무직 노조는 당장 지금의 처우개선을 위해 협상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넓은 의미로 먼 미래를 바라보는 협상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겠고 노조원들도 정의롭고 원칙을 지키는 일에 용감하게 행동했으면 한다. 노조는 학교를 악덕 기업으로 생각하는 듯 허술한 공문과 협박하는 문구를 보내면 학교가 벌벌 떨며-실제로 싸우기 싫어 징수 결의를 철회하는 학교가 많았음-일을 이행하길 바랐다면 오산이다. 학생들의 교육에 힘을 기울여야 할 교사와 교직원들이 노조와의 협박성 면담과 협상에 기운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한다. 이 나라의 다음 세대인 자라나는 학생들과 그들의 학부모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기억하길 바라며 진정 이 나라가 원칙이 지켜지고 정의로움이 살아 있는 나라가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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