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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도리 엄마    
글쓴이 : 김인자인    21-10-27 16:26    조회 : 2,288
   목도리 엄마.hwp (17.5K) [0] DATE : 2021-10-27 16:26:55

목도리 엄마

김인자

 

   한때 아들만 둘이면 목메달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목메달은 목을 매달다라는 말과 발음이 비슷한 점을 빌어 해학적으로 번진 말이다. 딸보다는 아들을 선호했던 우리 부모들이 아들에게 기울였던 노력과 금전적 희생의 대가에 따른 자조(自嘲)가 목을 매달고 싶을 정도로 크고 허무하다는 표현을 이렇게 풍자한 것이었다.

   실제로 어느 조사에 의하면 아들은 54%가 늙은 부모를 구박하고 며느리는 14%, 딸은 11%였다고 한다. 아들만 둘이면 108%가 된다니, 차마 드러낼 수 없는 부모 심정이 오죽하면 목메달이라는 유행어로까지 나왔겠나 싶다.

 

   아들 둘을 키워낸 친구가 있다. 큰아들이 사법고시 공부 중이었는데 2차에서 몇 번 발목이 잡혀 맘고생을 했다. ‘올 한해만 더 해 보고라는 것이 몇 해를 거듭하면서 답답해하는 친구 응원차 용하다는 점집에 같이 갔었다.

   점쟁이는 친구에게 한 번만 더 해 보라는 점괘를 내렸고, 함께 간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괜한 핀잔을 했다 자네처럼 신사적인 사주가 별로 없어. 팔자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부족한 게 없네. 앞으로는 이런 데 다니지 말고 그냥 그렇게 살어.”라며 무심한 반말로 별것도 아니란 듯 툭 던졌다. 그 말은 맞았다. 난 교회에 다니고 있었으니까.

   친구 아들은 한 번만 더해 보라는 말에 희망을 품고 기대를 했지만, 또 실패했다. 점 치는 이는 한 번만 더 해 본 뒤 미련 갖지 말라는 것을 그렇게 에둘러 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친구의 숨구멍을 틔여 준 건, 작은아들이었다. 공부 잘하는 형과 달리 살고 싶다며 교사가 되겠다던 아들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중등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일찌감치 제 밥벌이를 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친구는 아들의 두 달 치 등골을 뺐다라고 하면서 명품가방을 들고 왔다. 아들의 월급으로 그 가방값을 치렀으니 등골 뺀 값 아니냐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얘기를 했다. 교사 발령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상의 여교사와 연애를 시작했단다. 그뿐이랴 일 년여 동안 실업자인 동기들 밥 사고 술 사느라 통장이 텅 비어 있는 걸 확인하는 순간 빼앗다시피 얻어낸 가방이란다.

   이때까지 두 녀석이 내 등골 뺀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껌값이라며 아들에게 껌값 정산을 당당히 요구했다는 내 친구가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친구는 두 아들이 결혼하면 촌수 없는 동포쯤으로 여기며 살겠다는 각오를 이미 끝내고 있었다.

 

   실은 그즈음에 내 아들도 원하던 공부를 마치고 모기업의 연구원으로 취업하여 외국 출장이 잦았다. 어느 날 면세점에 가보자는 아들 손에 이끌려 명품관을 구경했었다. 아래층 매장을 거쳐 위층에는 살굿빛 조명 아래 귀한 골동품처럼 한 개씩 앉혀놓은 가방 중 하나가 눈길을 멈추게 했다.

   하얀 장갑을 낀 여직원이 날렵한 손짓으로 얘는, 얘는하면서 물건이 아닌 유기체를 대하듯 설명했다. “핸들은 00 산 뱀피로 만들었습니다. 내피는(...)” ‘아니 손잡이라고 하면 되지 뭔 핸들씩이나 운전대도 아니고못마땅했지만, 내색은 할 수가 없었다. 고용주의 전략에 그녀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사이 슬그머니 달러로 적혀있는 가격표에 눈길을 돌렸다. ‘면세가격이 저 숫자라면, 저 숫자에 곱하기 천을 하면, 그리고 소비세까지 더해지면순간, 심장이 놀라 불 화로처럼 따끔거렸고 얼굴까지 화끈거렸다. 일단 그 자리를 피하고 보자는 마음에 적당히 둘러대고 막무가내로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지만, 물정 모르는 철부지 엄마였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다.

나의 이런 행동이야말로 성실히 안내하던 그녀에게 조소 거리가 될 만했으리라. 가방과 가치를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누릴 능력도 없으면서 허세만 부린 꼴로 비쳤을 테니까.

 

   그깟 명품가방 이제까지 별 관심도 없었고 가격만큼 실질적 가치도 인정하지 않고 살았다. 더구나 아들이 그 값을 치르게 하면서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나의 소비성향이나 윤리 기준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내 눈길을 잠깐 멈추게 했던 가방은 친구의 가방 두 개 값이었다. ‘제기랄, 명품을 가릴 줄도 모르는 주제에 쓸데없는 곳에서 눈이 밝아져 분수에 맞지도 않는 고가의 명품이 왜 보인 건지.’ 눈이 보배인지 방정인지 도무지 창피해서 누구에게 말도 못 했다. 잠깐 턱없이 둥둥 올라갔던 눈높이에서 어지러워 맘고생만 하던 중이었다.

  이런 참에 친구의 담백한 행동은 그동안 내 어지럼증을 한순간에 우습게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당당하고 솔직한 친구의 행동이야말로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순수하게 표출해낸 명품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순간이동이 가능한 변심을 실감하고 보니, 욕설 같기만 했던 변덕이 죽 같다라는 말의 유연성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명품이 되어버린 친구에게서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내 마음의 저렴한 이중성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스스로 싸구려가 될 수 없다면 자유로워질 수도 없다는 말처럼 볼품없는 내 양면성을 인정한 뒤 찾아온 자유로움은 평온이었다.

 

   몇 달 뒤였다. 아들이 생일 선물이라며 내어놓은 것은 면세점에서 잠시 눈길이 머물렀던 그 가방이었다. 내가 반품소동이라도 벌일 것을 짐작했던지 품질보증서는 가방을 몇 번 사용한 후에 주겠단다. 아들의 등골을 몇 달 치나 빼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네 덕에라는 감탄사와 더불어 사회인과 경제인으로까지 완전한 독립을 인정하는 덕담을 하며 기꺼이 받았다. ‘결혼 후 더 달라질 아들의 푸대접(?)에도 노하지 않겠노라.’ 했던 내 친구의 계산법을 차용했기에 가능한 수용이었다.

  “네 덕에라던 친정엄마의 칭찬과 감탄사 몇 마디가 어린 시절 마법 치료 약이었던 빨간약(머크로큐롬)이 되어 내 마음을 치유했었다. 아들도 마음이 시리고 덧이 날 때마다 엄마의 믿음과 칭찬이 마법의 응원가가 되어 위로받기를 소망하면서.

 

   아들 둘에게서 일찌감치 껌값 정산해 버리고 욕심까지 다 비워낼 수 있었던 내 친구는 가난하지만 당당한 엄마의 힘을 가졌다. 비싼 선물 앞에서 몸 사리던 나까지도 기껍게 하였다. 고슴도치 딜레마와 같은 학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모자 관계의 모순을 인정할 줄 아는 그다. 자식에게 지나친 집착과 구속을 배제하고 목 매달 상황을 스스로 극복한 이 시대의 장한 어머니이다.

   목을 매달 상황에서도 목메달보다는 목도리로 만들어 시린 목을 감쌀 줄 아는 당당하고 현명한 여인이다. 이런 그가 내 친구라는건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를 끼얹은 아포가토를 같이 떠먹는 즐거움이다. 어느 가을날 카푸치노 거품을 입가에 살짝 묻히면서 함께 웃을 수 있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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