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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혀가 짧아져요    
글쓴이 : 장묘천    21-10-24 12:55    조회 : 2,514
   혀가 짧아져요.hwp (18.5K) [0] DATE : 2021-10-24 12:55:13

혀가 짧아져요./ 장묘천

 부산 동해선 일광역은 신해운대역에서 네 정거장이다. 신시가지가 형성된 이곳에 오피스텔과 프라자 건물이 경쟁하듯이 들어서고 있다.

일광해수욕장에는 낭만 가객 최백호의 고향 무대가 있다. 2021바다미술제가 10.16부터 11.14까지 열린다. 주제는 인간과 비인간. 아상블라주( 폐품이나 일용품을 비롯하여 여러 물체를 한데 모아 3차원적 입체작품을 제작하는 기법)이다. 바닷가를 따라 쭉 걸어 나가면 왼쪽에는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가 있다. 또 오른쪽 오리배 선착장에는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창 너머로 동양화처럼 펼쳐져 있는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Apt. 그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을 나와 동해고속도로를 달리면, 영덕 전원주택까지 자동차로 2시간 거리다.

 늦은 오후에 영덕군 병곡면 백석리에 위치한 장하모니 오두막에 도착했다. 집으로 들어선 나는 양옆에 있는 손바닥 텃밭부터 살폈다. 식물도 흙을 가리는지, 오른쪽에는 오이가 팔뚝만 한 것이 세 개다. 하지만 가지는 마른버짐이 허옇게 번지고 쪼그라든 것이 다섯 개나 달려있었다. 미간을 찡그리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추나무에는 풋고추가 주렁주렁 달리고 고구마 줄기는 옆집까지 뻗쳤다.

 여름 날씨는 제멋대로다. 이른 아침부터 잿빛 하늘에서 우르릉 쾅쾅거리더니, 소낙비가 살처럼 내리꽂혔다. 우리는 테라스로 나갔다. 개구쟁이 미소를 머금고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어느덧 마당을 때리는 빗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남편 리치는 임시 식탁으로 사용하기 위해 창고 앞에 있는 대형 고무 물통을 처마 밑으로 끌고 왔다. 거꾸로 퍽 엎었다.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부산에서 가져온 에그플랜트 파마잔치즈파스타와 생수 500mL 두 개를 들고나왔다. 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그의 손에는 소주 반병과 소주잔 두 개가 들려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유아 크레이지.”라며 한쪽 눈을 흘겼다. “오 예스! 위아 크레이지라고 되받아치는 그와 나는 낄낄거리며 소주잔을 들어 짠 부딪혔다.

 마당 아래쪽에는 삼십 평쯤 되는 텃밭이 있다. 올해는 뒷집에 사는 83세인 강 언니와 신작로 가에 사는 80세인 김 언니가 호박과 대파를 심었다. 비가 멎고 먹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쳤다.

 강 언니가 장화를 신고 호박밭으로 들어갔다. 그는 누런 호박을 찾아 한 덩이를 뚝 땄다. 낑낑거리며 들고 나와 길가에 놓아둔 손수레에 담았다. 다시 밭으로 돌아간 그는 잽싼 손놀림으로 파를 뿌리째 쑥쑥 뽑았다. 그리고는 야야, 이것 받아라.”며 나를 불렀다. 그는 담벼락까지 성큼성큼 걸어와서 팔을 쭉 뻗어 건네주었다. 나는 얼떨결에 두 팔을 벌려 한 아름 받았다. 그리고 또 그는 손수레를 끌고 내려가며 한마디를 던졌다. “야야, 부산 갈 때 좀 뽑아가거라. 여기는 흔하지만 거기는 다 돈이다.”

 정오가 지났다. 아랫집에 사는 마을 천사, 정 언니가 밭에 심고 남은 배추 모종과 호미를 들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깔끔한 성격인 그는 대뜸 야야, 이것을 이대로 두면 어짜노. 다 뽑아 버려야제.”라며 나를 돌아보고 한소리 했다. 그는 고추나무 아래로 가서 호미질로 골을 파고 북돋우며 빠른 손놀림으로 잡초를 휙휙 뽑아버렸다. 농사란 자도 모르는 나는 무안해서 얼른 고무장갑을 끼고 그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도드라진 흙에 손가락 두 개를 푹푹 쑤셔 넣어 구멍을 만들었다. 거기에 배추 모종을 넣고 흙으로 덮었다. 나도 따라 했다.

 고구마튀김을 좋아하는 내가 그를 볼 때마다 언니야, 고구마 심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6월 어느 날 그는 이웃 밭에서 고구마 모종을 얻어 와서 고추나무 뒤에다 심어주었다. 그 줄기가 무성하게 자라 사방팔방으로 뻗쳤다. 그는 그것을 한 방향으로 눕히고, 촘촘하게 난 곳을 추렸다. 고구마 줄기를 꺾어 들고 야야, 이것이면 저녁 반찬은 되겠제?”라며 한 주먹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는 처마 밑에 털썩 주저앉아 대파와 고구마 줄기를 다듬었다.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던 강 언니가 손녀를 데리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시누이와 올케 사이인 그들은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줄기를 깠다. 나도 거들었다. 저만치 서 있던 여섯 살 꼬맹이 숙녀가 수줍은 듯 몸을 비비 꼬며 나에게 해맑은 웃음을 던졌다.

  해는 어느새 서쪽 하늘에 걸렸다. 나는 김 언니의 밭에 내려가서 애호박 한 개를 슬쩍했다. 그것을 부엌으로 가져가서 총총 채로 썰었다. 부침가루, 계란, 쇠고기 간 것. 그것들을 모두 믹싱 볼 스테인리스 양푼에 담고 또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낸 달콤한 러브 소스도 넣었다. 빨강 주걱으로 쓱쓱 버무려서 호박전을 부쳤다.

 우리 집 지붕 꼭대기와 수평인 강 언니 집 마당에 부침개 한 접시를 올려놓고 돌담을 타고 기어올랐다. ‘언니야, 언니야.’라고 연거푸 불러도 대답이 없다. 부엌으로 들어가 가스렌즈 옆에 놓고 나왔다. 또 한 판을 담은 접시를 들고 뒤뜰로 돌아갔다. 사다리를 타고 윗집 마당으로 올라섰다. 고추밭으로 난 길을 타고 올라가 숙이 집 얕은 담벼락 앞에서 멈췄다. 왼쪽 다리로 툭 튀어나온 하수구 배관을 밟고 허리를 굽혀 부침개 접시를 그 집 마당에 들여놓았다. 그리고는 담을 타고 걸터앉았다. 깊은숨을 한 번 휴 내뱉고는 마당으로 폴짝 뛰었다. 그렇게 경로당 회장인 큰 언니 집까지 배달 완료.

  그다음 날은 이른 아침부터 동네가 소란스러웠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동생뻘인 뒷집 숙이는 억척이다. 땅도 있고 배도 있다. 하지만 목욕비를 벌겠다며 새벽 2시에 멍게 작업장으로 나갔다.

 강 언니, 정 언니, 김 언니... 이 마을 언니들은 모두 경로당으로 들어온 고등어를 손질하러 새벽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에 그곳으로 몰려갔다. 정 언니와 강 언니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선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건네주었다.

 이 마을 어선 선주들은 수시로 갓 잡아 온 생선을 경로당으로 보내준다. 그러면 내 입이 덩달아 호사를 누린다. 그런 나는 군침을 삼키며 프라이팬에 등푸른생선 세 마리를 노릇노릇하게 구웠다. 접시에 담아 마당으로 가져갔다. 리치와 나는 임시용 야외식탁에서 마주 보고 앉았다. 밥 한 공기와 생선구이로 아침 식사를 끝냈다. 하지만 나는 매콤한 김치가 먹고 싶었다. 자그마한 양푼을 들고 아랫동네에 사는 78세 깔끔이 정 언니 집으로 갔다.

언니야, 김치가 없다. 한쪽만 줘라.”

오냐, 오냐. 주고말고. 이 마을에서는 달라는 사람도, 주러 오는 사람도 없다.”며 함박웃음을 귀에 걸고 스테인리스 양푼을 받아들었다. 그는 김치냉장고를 열고 김치 통 하나를 낑낑거리며 꺼냈다. 뚜껑을 열었다. 김치 반 포기가 어른 머리통만 해서 입이 떡 벌어졌다. 김치 색깔이 선홍색이다. 침이 꿀꺽 목젖으로 넘어갔다.

 정 언니는 묵은지와 새 김치가 서너 통 있다며 한 통 가져가란다. 집수리해야 하는 나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는 대형 지퍼 백에 김치 두 쪽을 넘어 쓱 잠그고, 또 하나를 쑥 빼 주둥이를 벌리고 한 포기를 더 담았다. 나는 그만. 언니, 그만!’을 되풀이하며 봉지를 빼앗듯이 받아들었다.

 시골에서는 오밤중에 잠이 깨며 나는 커피 믹스 한잔을 들고 마당으로 나간다. 별이 점점이 박혀있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시야를 바다로 던진 채 커피를 홀짝이며 멍 때리기를 좋아한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는 귀청을 두들기고. 깜깜한 칠야, 불 밝힌 고기잡이배들이 통통거리며 하나둘... 검은 물결을 헤치며 바다로 나간다. 마음은 천상의 낙원을 누비는 것처럼 평화롭다.

 부산은 영덕과 다르다. 일광 신시가지 아파트로 이사 온 지 7개월이다. 나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그들도 나를 모른다. 하지만 영덕에 오면 언니 부자인 나는 실버 개구쟁이가 된다. 혀는 짧아지고 말도 반 토막이다. ‘사모님이 아니라 언니야가 되고, ‘입니다가 아니라 그렇다 아이가이다. 나도 모르게 대문 없는 이 마을 언니들을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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