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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놀자는 건데    
글쓴이 : 김인자인    21-09-13 15:13    조회 : 2,627
   같이 놀자는 건데(한산).hwp (16.5K) [0] DATE : 2021-09-13 15:13:58

같이 놀자는 건데

 

김인자

 

     “, 악땅 않. .” 갑자기 악을 쓰듯 내지르는 손자 놈 목청에 놀라 신문을 훑고 있다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74, 손자 두 녀석이 현란하게 장식된 플라스틱 칼자루와 칼끝을 양쪽에서 잡은 채 입씨름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번엔 니가 악당 할 차례란 말이야.” “싫어 그래도 나 악땅 않 해, 차칸 사람 학 꺼야.” “, 나만 계속 악당 하는 거냐구, 너도 악당 해야지.” “싫어 형아가 악땅 해.” “자꾸 이러면 이제 너랑 안 놀 거야.” 하면서 큰놈이 잡고 있던 한쪽 칼끝을 놓아 버린다. 순간 작은놈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과연 다음 행동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서로 제 편인 줄 알고 있었을 할머니는 얼른 고개를 돌려 모르는 척 슬쩍슬쩍 곁눈질로 지켜만 본다. 

   한동안 칼자루만 쥐고 멍하니 서 있던 녀석이 갑자기 오리발만 한 작은 팔을 꼬아 팔짱을 끼고는 비스듬히 짝다리를 만들고 제 형을 째려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놈 봐라~ 맹랑한 건 진작 알았지만 이런 태도로 형에게 대들 만큼 버릇이 없어졌다니.’ 큰놈은 심성이 여리고 착해서 매번 동생에게 양보하고 일부러 져주면서도 억울함에 눈물을 찔끔대는 걸 몇 번 보았던 터였다.

   

 작은놈은 형을 따라다니며 상황습득 기회가 많았던 탓에 조기 학습이 되어 놀이나 언어 표현이 또래보다 월등히 빠르다. 잇속도 빨라서 형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을 제멋대로 재잘대며 형에게 지지 않으려고 대들기 일쑤였다. “엄마는 내꺼야하면서 지 엄마 목을 껴안고 입맞춤을 하며 형의 접근을 차단하기까지 하는 녀석이다.

   그냥 있어도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큰놈은 이런 동생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씨익 웃거나, 당연한 듯 동생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가족이 외출할 때도 눈치 빠른 작은놈은 엄마 아빠 신발을 신발장에서 미리 꺼내놓고는 칭찬을 기다리곤 한다. 그럴 때 위쪽에 놓인 신발을 동생 손이 닿을 수 있는 칸으로 옮겨주면서 동생이 꺼내어 칭찬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녀석이 큰놈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대로 큰 녀석에게 대견함과 안쓰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프로이트와 쌍벽을 이루었던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동생이 생겼을 때 첫째는 폐위된 왕과 같은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동생은 질투에 불타는 야심가나 타협을 잘하는 정치가의 기질을 갖게 된다. 형보다 동생이 위험한 행동을 하려는 것은 형과 똑같으면 안 된다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야구선수 중 도루를 자주 실행하는 선수들을 상대로 연구한 결과 대부분이 동생이었고 그런 행위는 위험 행동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생이 형과 달라보이는 것은 우월한 능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계속 짝다리를 까딱까딱 건들대며 가자미눈을 한 채 째려보고 있는 동생에게 왜 그래, 너랑 칼싸움 그만할 거야, 저리 가.” “.” “너랑 안 논다고 했잖아. 저리 가라고 쪼~.”“, 지금. . . . 웅얼웅얼 형에게만 들려주는 작은 소리였다. “” “형아 바보야~~~”

   정보 매체를 통해 4살짜리 시선에 들어온 악당의 모습은 그랬다. 정확히 33개월을 넘어서는 눈동자로 흡수지처럼 빨아들인 누아르의 영향력은 건방진 모습의 가자미눈으로 째리는 것과 건들거리는 짝다리 모습으로 전이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작은놈이 울음에 섞어 이미 악당 역할을 하고 있다라는 고백을 함으로써 둘에게는 금방 평화가 왔다. 악당은 늘 죽어야 하든가 져야만 하고, 착한 사람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칼싸움 놀이가 다시 시작되었다. 악당의 종말이 어떤 건지 알기에 역할조차도 하기 싫었지만, 내 욕심만 부리면 평화가 깨져 버린다는 걸 4살짜리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른방식으로 가르치지 않고 기다리며 바라 보아준 것 뿐인데, 아이들 방식의 전쟁과 타협을 통해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것도 착한 사람의 방식으로. 


   “이번엔 할머니가 악당 할 테니까 너희 둘이서 착한 사람 할래?” 이렇게 사랑스러운 녀석들을 향해 할머니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어찌 악당 혼자서 착한 사람 둘을 이길 수가 있겠는가? 아니, 지금은 악당이 열이라도 착한 사람에게 져줘야 하는 싸움이란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아이들도, 착한 사람이 늘 승리할 수는 없다는 걸 인지하는 성인 의식 같은 터널도 지나야겠지. 칼싸움 놀이처럼 선과 악의 대립에서 권선징악의 결말이야말로 한동안 이 아이들이 바르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성장 배양토가 되어 주기를 소망한다.

 

   40년 동안 4살 터울의 남매를 키웠다. 큰놈은 남동생에게 양보하면서 살았던 적이 더 많다고 한다. 작은놈은 누나에게 당하면서 살았던 기억이 더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누나라서, 이런 동생이라서, 서로에게 힘과 자랑이며 따끈한 환상의 조합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을 똑같은 사랑으로 키웠다고 말해준다. 주는 사람은 셈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크기는 언제나 자기 그릇의 크기대로 받는 쪽에서 계량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수학 공식에도 나와 있지 않은 부모의 계산법과 자식의 계산법이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느 쪽에도 더 큰사랑이라 답할 수 없는 맏이와 차지의 조화로 내일은 더 상승한 평화를 소망할 뿐이다.

 

   이제는 딸아이가 낳은 아이들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본다. 비로소 내아이때 알지못했던 맏이와 차지의 새로움을 손자를 통해 바로 보게 되었다.

   바라기는, 형이라 불리는 맏이 사랑이 더 많은 이들에게 따스하게 스며들기를. 동생이라 불리는 차지의 욕구와 지혜는 AI 와의 4차원 세계에서 까지도 맏이 사랑을 더 깊고 넓게 교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를. 사랑으로 채워진 삶의 풍요를 감사하며 우리가 겸허히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손자들아! 착한 사람 지향을 좀 더 오래 바라고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하마. 너희가 지금 놀자고 하는 역할 놀이에서처럼 언제나 착한 사람이 될 수 없고, 언제나 악한 사람도 없다는 걸 알게 될 즈음엔 어른 흉내도 내려 하겠지? 아직 이 할미도 어른이라고 자부하지 못하는 걸 보면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만족할만한 어른이 되었다는 말을 할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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