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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구리울음    
글쓴이 : 진윤순    21-08-30 23:24    조회 : 2,871
   개구리울음(한산).hwp (90.0K) [0] DATE : 2021-08-30 23:24:55

개구리울음 / 진윤순  

한밤중에 잠이 깼다. 기우는 달이 창문을 두드려 잠을 깨운 모양이었다. 베란다 화초들이 달빛을 받아 거실 바닥에 너풀거렸다. 살며시 거실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갔다. ‘? 이게 무슨 소리!’ 어렴풋한 개구리울음이 꽃잎에 포개지고 있었다. 귀를 기울였다. 너무나 정겨웠다. 달빛 출렁이는 베란다에 하늘거리는 화초들 사이로 개구리울음 얹힌 밤은 이미 내 어린 날 고향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삼대가 사는 대가족이었다. 시골에서 비 오는 날은 공휴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날은 어김없이 텃밭에 있는 부추를 베어다 엄마는 부추 전을 부쳤다. 어른들은 고소한 안주가 있으니 막걸리 한잔 걸친 후 낮잠으로 그동안 쌓인 피로를 녹였다. 아이들은 한 입이라도 더 먹으려고 싸움판이 벌어졌다. 나는 위로 막내 삼촌과 막내 고모에게 져야 하고, 아래로 네 명의 동생에게 양보해야 하는 맏이였다. 그날도 먹는 것 때문에 싸움이 벌어져 엄마의 불똥이 나에게 튀었다. 마루 끝에 나앉아 훌쩍이는데 개구리가 보였다. 비에 젖은 연기가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틈에서 그 개구리도 울고 있었다. ‘쟤도 나만큼이나 억울한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기 오른 어른들이 낮잠을 자러 가고 나면, 엄마는 나를 불러 커다란 부추전 한 장을 앞에 내놓았다. 나는 엄마에게 혼났던 설움을 잊고 부추전을 먹었다. 개구리도 울음을 뚝 그쳤다.   

언제부턴가 고달픈 시집살이와 대가족 살림에 치인 엄마의 촉촉한 눈을 나는 자주 보았다. 한때는 두 삼촌, 고모, , 동생 다섯 명이 학생이라 아침마다 숙제와 준비물로 북새통이었다. 엄마는 입시생인 시동생과 시누이 도시락 준비하고 어른들 아침상 준비하다 보면, 자신의 딸에게는 숙제나 준비물을 챙겨주지 못했다. 나는 못다 한 숙제 때문에 개구리처럼 폴짝거리며 울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눈물을 삼켰고 나는 울면서 학교에 갔다. 우리 민요 중에 으스름달밤에 개구리 우는 소리 애달파라 인생살이 설움도 많구나라는 노랫말이 있다. 처량하고 구슬픈 개구리울음 소리를 들으면 고달프고 설움 많은 엄마의 인생살이도 서글프게 느껴졌다. 비가 오려고 꾸물거리는 날은 부엌에서 혼자 울었을 엄마가 생각난다. 매서운 시집살이를 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나이였고 그때마다 들리는 개구리 소리는 나와 엄마를 달래는 개구리의 위로처럼 들렸다.   

그때부터였나보다. 초저녁부터 울었던 개구리울음은 어린 나의 밤을 꼬박 앗아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비 오는 날이면 꼬마 계집애는 방문을 열어젖힌 채 팔베개를 하고 누워, 떨어지는 낙숫물과 폴짝거리는 개구리에게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엄마한테 청승맞다는 꾸지람도 많이 들었다. 고민인지 즐거움인지 모를 심각한 표정으로 툇마루에 턱을 괴고 앉아 있다는 이유였다. 엄마의 눈물이 나를 슬프게 했다는 것을 엄마는 알 턱이 없었으리라.   

초등학교에 가려면 마을을 벗어나 농로를 걸어야 했다. 그때도 나는 개구리 걸음 따라 덩달아 폴짝거렸다. 무논으로 뛰어든 개구리를 바라보다 헤엄치는 거머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교정에 커다란 연못가에 벤치가 있었다. 물속에 아랫도리를 반쯤 담근 등나무는 벤치 위로 가지를 드리웠다. 체육 시간이 끝나면 그 등나무 아래 벤치는 여고생들의 쉼터였지만, 내게는 연못에 손 담그고 개구리들과 해작질하는 것이 더 신났다. 비라도 올 듯한 날에는 연못 속 개구리들이 나를 유혹했다. 녹색 개구리밥 사이로 또랑한 눈망울을 굴리며 들락거리는 개구리가 궁금해서 쉬는 시간에 연못에 갔다가 수업 시작종을 놓친 적도 있었다. 내 사연을 들은 선생님은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웃으면서 다음부터 종소리는 잘 들으세요.”라고 타이르기만 했다. 와글거리는 개구리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는 소리였고 그리움으로 남았다.   

도대체 그 개구리 소리는 어디서 왔단 말인가? 일주일째 들리는 정겨운 울음소리. 화초에 물을 주면서 아련한 그 소리가 귓불을 움켜잡았다. 비록 아파트 10층에 사는 집일지라도 나름 고향의 화단처럼 가꾸어 놓은 베란다에서 지는 꽃잎을 줍고 향수에 젖어 사는 나였다. 그 향수는 시집살이 한 많은 내 어머니의 고달픔도 함께 했다. 대도시 아파트에서 개구리울음 소리가 들릴 리 없을 텐데 귀를 의심했던 소리가 또다시 마음속에서 꼼질댔다. 다시 밤이 되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개구리울음 소리는 별초롱 앞세우고 달무리를 밟으며 올라왔다. 베란다 정원은 이미 어릴 적 마당이었고, 여고 시절 교정의 연못이 되었다. 약간 쌀쌀했지만 베란다 문과 거실문까지 활짝 열어젖힌 나의 카페는 아를에 있는 고흐의 밤의 카페가 되었다. 달빛 찰랑대는 찻잔을 부둥켜안고 개구리 소리에 취하니 엄마에 대한 그리운 추억이 펄럭거렸다.   

우리집 앞에는 초등학교, 그 건너에는 아파트가 있다. 화단 말고는 흙도 밟을 수 없다. 혹시 초등학교 옆에 있는 공원일까? 산책 겸 개구리의 근원지를 찾아 공원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고인 물도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한동안 베란다 카페에 음악처럼 그리움을 올려준 개구리가 고맙고 신기했다. 나는 초롱한 밤하늘을 날아다녔다. 난간대에 몸을 바싹 붙인 채 내 귀는 허공을 더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뒤뜰에 1m 남짓한 수생식물 화분에서 올라온 소리가 아닌가. 개구리는 어떻게 그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을까! 부레옥잠을 보기 위해 학교 뒤뜰을 서성거렸던 기억을 되짚어보았더니 그곳이 분명했다. 개구리와 나 사이에 여정이 이어지는 순간, 마치 엄마의 개구리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개구리가 짝을 만나 무사히 학교 뒤뜰을 벗어나 그네들의 안식처인 들판에서 내게 들려줬던 고향의 엄마를 목청껏 노래하길 기도한다. 개구리울음 소리를 들으니 고단한 시집살이에 몰래 울던 엄마가 더욱더 생각난다. 엄마를 뵈러 친정에 다녀와야겠다. 친정 부모님의 회혼례 때 새색시처럼 웃던 엄마 얼굴. ‘딸아, 지금 엄마는 행복하단다. 결혼식을 또 했잖아.’ 벌써 엄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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