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N 할의 향기    
글쓴이 : 김인자인    21-08-28 11:22    조회 : 3,062
   n 할의 향기 ).hwp (31.5K) [0] DATE : 2021-08-28 11:22:50

n 할의 향기

김인자

 

   작은 아이 출산 후부터 시작된 편두통의 괴로움을 달고 살아야 했다. 두통을 일으키는 원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이 냄새에 민감한 것이었다. 차 안에 향기가 좋은 방향 제품을 놓아두는 사람들이 많다. 새 차 냄새가 좋아서 그 향기를 오래도록 즐기려고 차내 이곳저곳 씌워놓은 비닐 커버를 천천히 벗겼다고 말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새 차 냄새를 빨리 없애기 위해 탈취제를 놓아두고, 히터나 에어컨을 켠 채 창문을 열고 운행을 하는 등의 소란을 떨어야 했던 나였다.

 

   젊은 날 드라이 진을 마신 입에서 나는 향기가 솔 냄새 같던 남편에게서 어느 날 알만한 낯선 향이 콧등을 스쳤다. 입술이 비켜 갈 수 있는 간격에서 무례하게 살짝 흘러드는 그런 살냄새였다. 운동과 사우나를 그렇게 즐기는 사람임에도 피해갈 수 없는 향기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대가족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며 아동기부터 알았던 향기, 편두통 덕에 개 코가 되어버린 내가 아무도 맡지 못한 그 향기를 잡아낸 것이었다.

   마침 아빠 생일선물을 준비하는 아들 내외에게 향수를 준비하자고 했다. ‘노넨알데히드를 희석하거나 감출 수 있는 향을 발산하는 향수로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남편에게는 차마 정부가 공인해 주는 어르신 냄새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나를 위한 향수가 멋지긴 한데 남을 위한 향수는 배려인 거 아시죠? 마누라 탓에 이제껏 무취 인생이었지만 지금부터는 향기 나는 인생을 살아봅시다.” 이렇게 과장된 너스레를 떨어가며 부추기기도 했다.

   뜬금없이 향수 선물이라는 말에 고개를 가로젓는 남편이 백화점 향수 코너까지 동행하는 과정도 쉽진 않았다. 향 명도 알 필요 없이 냄새만 맡아 골라온 향수 가격에 놀라워하는 남편을 보며 내 나이를 생각하니 동병상련이 아닐 수 없다. 완경 (폐경을 이렇게 부르자고 한다.)을 지나 갱년기를 호되게 치르면서 웬만한 냄새에는 편두통이 극성을 부려대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렇게 부산을 떨어대며 마련한 남편의 향수병엔 아직도 구 할이 그대로 남아있다. 노인의 향기를 거부하고 감추려다 억지춘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추억을 얘기할 나이가 되면, 지인에게 향수 선물은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그리 유쾌한 선물이 아니라고 한다. ‘혹시 내 몸에서...?’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것이라니 비싼 돈 주고 되레 눈치 없는 사람으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선물 중 하나인 것 같다. 부부간에도 조심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장수했던 프랑스 루이 14세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숨기려 향수를 애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나이부터 70년이 넘는 장기집권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사건들의 악취는 향수로도 덮을 수 없는 괴로움이었지 않았을까?

   사람이 몸속에 쌓이는 노폐물에서만 악취를 풍기는 것이라면 한 사람이 스러짐으로 영원히 소멸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밟아온 발자국에 쌓여있는 잔재들에서 나는 냄새야말로 천년 향기가 되기도 하고 천년 악취가 되기도 한다는 걸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공칠과삼이란 잣대로 치적을 드러내기도 하고 공삼과칠이란 잣대로 손가락질하기도 하는 역사관점의 아이러니를 보기도 한다.

   어느 인생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 가라는 말도 하지만 무색무취의 물과 바람이 어디 그리 쉽긴 하단 말인가. 쉽지 않은 인생길에서 흐린 날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광만 있는 것도 아닌 삶이었다. 남편의 노넨알데하이드의 향기는 나와 함께 묻혀왔고 함께 묻혀갈 향기란 걸 알기에 남아있는 구 할의 향수병을 바라보면서도 채근하지 않는다.

   본격적인 여름으로 가는 7월 어느 즈음이 되면 옛고향 들판은 이 논 저 논에서 벼꽃이 지천이었다. 그때엔 매우 흔한 모습이라 그것이 꽃이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서야 벼꽃향이 구수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는 어떤 냄새라도 질색을 하던 터라 그 구수함을 마음으로만 그려서 해마 한 부분에 저장해 두었었다.

   벼꽃은 햇살이 열기를 달구기 시작할 때쯤부터 두 시간여 밖에 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향기를 맡는다는 것은, 목숨과도 같은 벼꽃의 위대함을 알 수 있는 자(농부?)만이 맡을 수 있는 향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아궁이 짚불 앞에 무릎 벌려 앉은 여인네의 속곳에서 나는 향기 같은 것이었을까? 부뚜막 가마솥에서 뜸이 들어가는 밥 냄새를 닮았든지, 푸르스름한 어둠 위에 깔리던 굴뚝 연기를 닮았을 것 같은 향이 정말 있었는지 모르겠다. 벼꽃을 꽃이라 보지 못했던 내가 어찌 그 위대한 향기를 맡을 수나 있었겠는가. 위대한 사람의 향기와 닮았거나 닮아야 한다고 여겨왔을 뿐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정지원 작사, 안치환 노래)라는 노래를 불러 국민 애창곡으로 만든 가수가 있다. 슬픔에 굴하지 않고 모든 외로움 이겨낸 사람이야말로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그 사람도 숲이었다가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아야 할 노년이 되면 누구나 품어야 할 향기가 있다. 그 노년의 노넨알데하이드향을 벼꽃향처럼 위대하고 구수하게 맡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우화등선(羽化登仙)이 아니고 무엇이랴. (21. 7.)

 

 


 
   

김인자인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10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60304
10 이별까지 책임질게 김인자인 01-20 16
9 그때, 그리고 나 (1) 김인자인 01-17 63
8 옆구리만 찌르다가 김인자인 12-01 2003
7 목도리 엄마 김인자인 10-27 2585
6 같이 놀자는 건데 김인자인 09-13 2627
5 N 할의 향기 김인자인 08-28 3063
4 이 죽일놈의 사랑 김인자인 06-23 2985
3 나만 변한것은 아니야 김인자인 04-19 3534
2 인감도장의 무게로 김인자인 03-22 3080
1 나는 삼류다. (2) 김인자인 01-27 6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