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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숙매표 국수    
글쓴이 : 김시현    20-10-20 18:27    조회 : 2,276
   이숙매표 국수(10).hwp (16.5K) [1] DATE : 2020-10-20 18:27:56

이숙매표 국수

 

                                                                                                                                                                                                                                                                              김시현    

  

이름이 수미향이었다. 새우 국수를 요리하는 가게였다. 큰오빠가 안내했다. 바지락칼국수 맛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소문난 맛집이라고 했다. 왕새우 한 마리가 들어 있는 칼국수였다. 육수에서도 새우 향과 맛이 났다. 듣던 대로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어머니 이숙매표 국수 맛을 그려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인 안도현이 연어는 강물 냄새를 기억한다.’라고 했던 것처럼 남해 바닷가 상짓골 우리 다섯 남매는 국수에 대하여 강물 냄새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어린 시절 국수를 좋아했던 식구들은 갓 뽑아온 국수 먹는 날을 기다렸다. 방앗간에 국수를 주문하고 찾으러 갔던 날 오빠들과 나는 신이 났다. 방앗간 마당에는 소면 발이 빨래처럼 걸려 있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거렸다. 늘어져 있는 광경을 보고 국수 가게 식구들은 참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맛있는 국수를 원 없이 먹을 것 같아서였다.

바람과 햇살에 말린 국수를 날라오던 일은 두 오빠의 몫이었다. 오빠들은 한 다발씩 묶여 있는 국수를 손수레에 옮겼다. 국수를 싣고 남은 자리에는 나를 태웠다.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번갈아 가며 손수레를 끌었다. 더 오래 타지 못해 아쉬워하는 나를 작은오빠는 곰살맞게 담 너머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태워 주기도 했다. 우리는 집으로 오는 길에 돌림노래를 불렀다. 합창하다 보니 금세 집에 도착했다.

마당 한쪽에는 쑥 향이 피어올랐다. 연기는 허공에 모락모락 그림을 그리다가 꼬리를 감췄다. 메케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대나무로 만든 평상 두 개는 작은 마당만큼 넓어 보였다. 낮에 방앗간에서 날라왔던 국수는 어머니의 정성으로 저녁 식사가 되었다. 온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국수를 먹기 전 장난기가 발동한 작은오빠는 연신 고개를 까닥였다. 장단이라도 맞출세라 나는 어깨를 으쓱으쓱하였다. 엄마는 모기에게 물리기 전에 어서 먹으라고 걱정 섞인 재촉을 하였다. 그 여름밤의 국수는 일용할 음식을 넘어 엄마가 만든 귀한 향기였다. 우리는 엄마의 향기를 영혼 깊숙이 들이마셨다. ‘후루룩후루룩목으로 넘어가는 소리는 듣기 좋은 악기 소리가 되어 우리 입맛을 돋우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방앗간에서 뽑아온 국수보다 더 좋아했던 국수가 있다. 엄마가 직접 손으로 밀어주었던 손칼국수였다. 가게 일로 바빴던 엄마는 새벽시장을 이용하였다. 바다에서 나는 작은 생새우 한 양동이를 사 왔다. 새우는 등껍질을 까야 했다. 그 일은 언니와 나의 몫이었다. 언니는 새우 껍질을 벗기다 말고 꾀가 생겨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기도 했다. 나는 국수를 먹고 싶은 마음에 남은 생새우를 다 벗겼다. 하얀 새우는 양이 많지 않았다. 생새우가 준비되면 냉장고에 잠시 보관하여 숙성시켰다.

해가 산허리에 걸려 있을 즈음 엄마는 국수 끓일 준비에 바빴다. 시집올 때 가져왔다는 갈색빛 홍두깨와 넓은 나무 도마를 챙기고 밀가루 반죽을 시작하였다. 반죽이 끝나면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반죽을 밀었다. 엄마와 언니는 홍두깨로 민 반죽을 돌돌 말아 일정하게 썰었다. 나와 동생은 국수가 늘어 붙지 않게 마른 가루를 뿌렸다. 큰 상과 작은 상마다 국숫발이 널려 있어 기분이 좋았다.

마당에 걸어둔 가마솥 곁에 불을 지필 나무들을 가져다 놓는 것은 작은오빠였다. 불을 지피는 일은 아버지가 맡았다. 가마솥의 국물이 끓어오르면 미리 준비했던 새우를 몽땅 쏟아부었다. 작은 알갱이의 몽실몽실한 하얀 새우 살이 뜨거운 물에 살을 튕기며 솟아 올라왔다. 새우로 우려낸 국물은 집 간장으로 간을 하였다. 큰 나무 주걱으로 휘저은 후 국물맛을 본 엄마는 시원하다.”라고 하였다. 그 한마디에 작은오빠와 나는 손뼉을 치며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구경하는 다섯 남매에게 엄마는 덥다고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했다. 우리는 엄마 곁에서 올망졸망 앉아 국수가 빨리 끓여지기를 기다렸다. 땀범벅이 되어 이웃에게 나누어 줄 양푼과 우리 식구 7개의 그릇에 국수를 옮겨 담는 엄마의 빠른 손놀림은 경이로웠다.

 

작은오빠는 우물을 펌프질로 퍼 올려 큰 그릇에 채웠다. 그 물 위에 뜨거운 국수 그릇을 배처럼 둥둥 띄웠다. 나는 양푼을 손으로 돌리며 장난을 했다. 더운 열기를 한풀 날려 버린 국수를 엄마는 큰 쟁반을 받쳐 든 작은오빠와 언니에게 국수를 나르게 하였다.

칼국수의 국물은 뜨물처럼 뽀얀 색깔이었다. 탱글탱글한 작은 새우는 식감도 쫄깃했다. 진한 국물맛을 내어 담백하고 깔끔하여 국물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새우의 진한 향이 나는 맛은 어린 나에게도 시원하다고 표현하게 했다. 호로록호로록 국수 면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소리가 밥상을 가득 메웠다.

칼국수를 먹은 날 저녁엔 평상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이불 삼았다. 하늘을 가득 메운 은하수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예뻤다. 카시오페이아, 북두칠성을 기준으로 별자리를 찾는 즐거움은 상짓골 다섯 남매에게 여름밤이 안겨준 선물이었다.

 

코로나로 묶인 몸이 되다 보니 식구들과 왁자지껄 어울려 먹었던 추억이 묻어난다. 땀을 흘리며 불을 지피고 작은 새우를 듬뿍 넣어 끓여 내었던 이숙매표 특별식 새우 칼국수가 그립다. 엄마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잔칫날처럼 국수를 만들고 나누었던 시절을 우리 다섯 남매는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올여름 엄마는 냉동고에 얼려 두었던 새우를 건네주며 만들어주지 못하는 마음을 대신하였다. 연어가 강물을 기억하듯 그 맛을 아들과 딸에게 외할머니표 새우 칼국수 한 사발을 끓여 재현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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