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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마기구와 마라톤    
글쓴이 : 김시현    20-05-28 11:05    조회 : 1,704
   승마 기구와 마라톤(5.18).hwp (16.5K) [0] DATE : 2020-05-28 11:05:32

 

열심히 운동해보겠다고 샀던 승마 기구는 얼마 가지 못하고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급기야 가격을 80% 인하하여 승마 기구 사진을 찍어 중고장터에 올렸다. 운영자는 배너와 함께 물건 사진을 첨부하여 올리라고 했다. 5분도 안 되어 댓글과 전화 주문이 폭주했다. 2주만 기다려 달라는 중년 남자, 택배비를 나에게 부담하라는 젊은 청년, 가격절충을 하자는 젊은 여성 등, 나는 최종적으로 변비에도 좋고 다리에 힘이 생긴다는 설명에 자신에게 꼭 필요한 운동기구라고 말하는 장애우에게 팔기로 했다. 그녀는 몸이 불편한 자신을 대신해서 지인을 보내겠다고 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집안에 외부인을 들이기가 마음에 걸렸지만,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방문해 달라고 당부한 후, 퇴근 시간을 고려해서 오후 7시에 만나기로 했다.

 

작은방에 있는 승마 기구를 꺼내어 거실에 꺼내놓았다. 벨이 울리며 지인이라는 남자는 초등학교 다니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왔다.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키가 작고, 탄탄한 몸매가 드러나는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안녕하세요밝게 인사를 하며 거실로 올라왔다. 나는 코드를 꽂아 전원을 확인한 후 작동법을 알려 주었다. 그는 딸과 번갈아 가며 타고는, 여러 번 승마 기구를 테스트하였다. 아이는 신기하다는 듯이 강약을 조절하며 승마체험에 재미를 붙였다.

바이러스도 걱정되고, 외부인을 집에 오래 머물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구매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송금할 테니 승마 기구를 보내 달라고 했다. 입금이 확인되자 이젠 가라고 말을 하려고 보니 그들은 여전히 승마 기구를 타며 즐기고 있었다. 그는 딸에게 괜찮네.”를 연발하였다.

 

승마 기구 점검을 마치자 집을 구경이라도 하려는 듯, 부녀는 거실을 죽 훑어보았다. 마라톤 대회에서 받은 메달을 걸어둔 나무 액자를 관심 있게 바라봤다. 그는 하프만 있네요.”하고 다소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아니요. 울트라도 있어요.”

울트라요? 몇 킬로요?”

“56km 한강 마라톤이요

나는 1회 한강 마라톤 대회에서 나이 제한 없는 여성부에서 9위를 하여 상을 받았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한때 주로(走路)를 달렸을 때, 마라토너들은 지쳐 있는 선수들에게 서로 격려하며, 손을 흔들고 지나갔다. 다리에 힘을 얻어 피니쉬로 들어설 때의 기쁨은 마약 같은 중독성에 빠져들게 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러면서 또 대회를 나갔었다. 마라톤은 내게 진실게임이었다. 내가 노력한 만큼 기록이나 풀을 완주하기까지의 대가도 정확하게 나타났다.

그는 울트라는 한 번도 뛰어보지 못했네.’혼잣말하며 관심을 보였다. 울트라는 잠을 잘 견디는 체력전 게임이다. 하프와 풀은 낮에 대회가 있고, 울트라는 밤에 대회가 열리는 경기다. 나는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56km를 뛸 때도 화장실에 수십 번 들락거리며 잠을 이기려 애썼던 기억이 있었다.

100km 뛰는 게 목표였지만, 뛰어보지도 못하고 56km 한 번으로 울트라 경험을 얻었다. 매일 마라톤 일지를 쓰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시작했었다. 연풀(2주 연속으로 뛰는 풀)은 마라토너들에겐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매주 하프대회에 나갔었고, 1년 동안 풀을 13번이나 뛰었다. 과유불급으로 악성빈혈까지 찾아왔다. 몇 년간 뛰었던 마라톤을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우리 아빠도 마라톤 메달이 많아요.”라고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카랑카랑하게 말했다. 나는 아이의 말에 성의 없이 그렇구나.” 짧게 대답을 하였다. 낯선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기가 불편했다. 사무가 끝났으면 빨리 가라는 말이 목에까지 넘어왔지만, 차마 그 말은 못 하고, 마라톤을 그만둔 지 오래됐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들은 그제야 나의 불편함을 알아차렸는지 미적미적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 8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나는 승마 기구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고 떠나는 아이에게는 주스와 과자를, 그에게는 홍삼드링크를 건네주었다. 아이는 받은 것을 아빠에게 보이며 좋아했다. 현관문을 닫고, 돌아서는 데 마음이 좀 불편했다. 똘똘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는 마라톤 하는 아빠를 자랑하고 싶어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혼자 사는 나는 낯선 이들이 집에 오면 불안한 마음에 현관문을 열어두곤 했었다. 이날은 퇴근하고 저녁 식사도 못 한 때라 배도 고팠다.

 

부녀가 떠난 후 며칠이 지나도 마라톤 생각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휴일 오후가 되자 동네 학의천으로 나갔다. 한참 동안 쉬었던 마라톤을 바로 뛸 수 없어 봄꽃들의 잔치 속에 천천히 7km 지점까지 걸었다. 걸으면서 학의천에서 무리 지어 놀고 있는 오리 떼를 발견하였다. 주로에서 모여서 달렸던 마라토너들 같았다. 오리는 물아래에서 무수히 발길질하고, 마라토너들은 주로에서 수없이 뛰고 뛰는 것이 같아 보였다. 걷기로 몸을 풀었으니 달려 보았다. 몸의 근육이 마라톤 했던 기억을 서서히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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