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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판에서 만난 두사람    
글쓴이 : 김시현    20-05-28 11:04    조회 : 1,639
   사이판에서 만난 두 사람(5.7).hwp (17.0K) [0] DATE : 2020-05-28 11:04:31

언니~ 겨울에 따뜻한 곳으로 놀러 가자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사이판 일정을 동생에게 맡겼다. 새해 1월 신혼인 딸을 꼬드겨 동생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영화 한 편 보고 나니 4시간 만에 공항에 도착하였다. 늦은 밤이라 콜택시를 타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리스 풀 빌라에 도착하여 일정을 살피고 잠이 들었다.

 

오전 10시에 렌트회사에서 데리러 왔다. 보험 가입 항목을 자차보험과 이외의 것까지 선택했다. 운전을 맡기로 했던 동생이 국내 면허증을 두고 왔지만, 다행히 사이판은 국제운전면허증 없이도 운전할 수 있어 내가 운전하게 되었다. 라우라우 비치와 탱크 비치가 첫날의 여행지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은 제주와 흡사했다. 구글 맵은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 비포장 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라우라우 비치에 도착하니, 관광객들이 바닷가에서 놀고 있었다. 우리는 파도 놀이를 하고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한참을 놀고 있는데 비가 내려 서둘러 짐을 챙겨 다음 목적지인 탱크 비치를 향해 출발하였다.

 

비포장 길을 30분쯤 달렸다. 구글 맵은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산길로 안내했다. 소나기까지 퍼붓기 시작하여 산길은 갈수록 험악하였다. 사람 키보다 무성하게 자란 풀은 길을 덮고 있었다. 머리가 쭈뼛쭈뼛 서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내렸다. 군데군데 큰 돌부리도 있고, 움푹움푹 팬 험한 길이었다. 누런 황토가 빗물에 흘러 내리고 있었다. 미끄러운 황톳길 언덕을 지나지 못하고 헛바퀴를 돌며 자동차는 멈췄다. 자동차에서 내린 동생과 딸은 자동차를 밀면서 발을 디딜 때마다 진흙 길 위에서 쭉쭉 미끄럼을 탔다. 나도 운전을 멈추고 내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동차 바퀴 하나가 골이 깊은 곳에 걸쳐졌다. 바퀴는 구렁텅이로 곧 빠질 것 같았다. 나는 불안하여 렌트회사에 연락하자고 제안했다.

 

동생이 렌트회사에 전화하던 차에 마침 SUV 자동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청재킷을 입은 운전자는 큰 몸집에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비대한 몸집에 레게머리를 하고 창문을 내려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보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과 그들의 외향적인 모습에 잔뜩 겁을 먹었다. 우리는 다급한 나머지 무조건 도움을 받기로 했다. 작은 체구의 여자 셋이 최대한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문신한 사람은 내리지 않았다.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우리 곁으로 왔다. 운전자와 동생과 딸이 자동차를 밀었다.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운전자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사람을 손짓으로 불렀다. 네 사람이 힘껏 자동차를 밀었다. 여전히 자동차는 전진하지 않았다.

 

걸쳐 있던 바퀴는 아슬아슬하게 금방이라도 빠질 것처럼 불안한 상태였다. 나는 전진을 포기하고 후진할 테니 도와 달라고 했다. 동생과 딸, 조수석 사람은 자동차에서 벗어났다. 운전자는 자동차의 바퀴 상태를 보며 밖에서 나의 운전대를 이리저리 살피며 도와주었다. 나는 사이드미러를 보며 운전자의 지시를 따라 운전을 했다. 걸쳐 있던 바퀴가 순탄하게 후진을 했다. 동생과 딸은 안도의 손뼉을 쳤다. 나는 한숨을 돌리며 안전한 곳으로 자동차를 세웠다. 자동차를 훑어보니 바퀴에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웅덩이를 지나왔던 자동차는 흙탕물을 누렇게 뒤집어쓰고 있었다. 풀이 스쳐 간 자동차 옆면에는 선명한 스크래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자동차를 세워 둔 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절박한 상황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그들에게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하였다. 험상궂은 인상과는 달리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들은 친절한 사람이었다. 훤칠한 키와 큰 몸집을 지닌 그들은 자유롭고 여유 있게 보였다. 자동차를 돌릴 수 없어 계속 후진하며 산길을 한참 내려왔다. 탱크 비치로 가기 전 우리가 지나갔던 비포장 길이 나왔다. 산길을 벗어나 후진하지 않고 전진할 수 있어 긴장이 풀렸다. 우리가 놀았던 라우라우 비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누구랄 것도 없이 동시에 ~예쁘다를 외쳤다. 아찔하고 난감했던 순간을 벗어난 안도감에 감동은 갑절이 되어 함성을 질렀다.

 

두 사람이 언덕길을 잘 올라갔는지 궁금하던 차에, 백미러를 통해 우리를 도왔던 그녀가 운전하며 우리 뒤를 따라서 오고 있었다. 그녀도 길 상태가 좋지 않아 탱크 비치 가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 나는 오른쪽 깜빡이를 넣었다. 그녀에게 받았던 고마움을 먼저 보내 주었다. 우리는 그녀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도 부메랑이 되어 한참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함박웃음까지 보내왔다. 사춘기 소녀처럼 순수하고 해맑은 그녀들은 짧은 시간 동안 여행길에서 만난 친구가 되었다.

 

나는 바퀴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고 싶었다. 자동차의 핸들을 돌려 물이 고여 있는 깊은 웅덩이 쪽으로 들어갔다. 흙탕물이지만 웅덩이는 바퀴에 묻은 진흙을 말끔하게 떨어지게 했다. 비포장 길을 달린 후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나왔다. 나는 흥분된 목소리로 지금부터 우리는 신나게 즐기는 거야를 외쳤다. 먼저랄 것도 없이 세 여자는 까르르 한바탕 웃음을 유쾌하게 쏟아냈다.

 

들뜬 기분으로 창문을 내렸다.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머리칼을 날렸고, 얼굴을 간지럽혔다. 우리는 기분 좋게 소리 지르며, 콧노래를 이어가며 흥얼거렸다. 도로는 신호등이 가물에 콩 나듯 있었다. 자동차는 아우토반 위를 달리듯 쌩쌩 달렸다. 비치 로드로 가는 길에 우리가 애태웠던 탱크 비치가 나왔다. 탱크 비치는 바닷속에 탱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하여 불린 이름이다. 탱크 비치에서는 탱크를 찾지 못했다.

 

뒷날 갔던 사이판의 진주 마나가하섬 호핑투어 때 태평양 전쟁의 흔적이 남긴 전투기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사이판의 명소답게 수정처럼 맑은 바닷물은 속살을 훤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하늘과 맞닿은 태평양 바다는 다양한 색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태양 빛에 따라 여러 가지의 바다색과 에메랄드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고운 밀가루 입자처럼 하얀 모래는 부드러웠다. 흰 파도와 푸른 물결을 따라 수만 가지의 물고기 떼는 정신을 앗아갔다. 검은 산호가 보이는 곳은 물결도 검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자동차를 반납하는 날,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나기까지 우리를 도왔다. 말끔하게 세차까지 해결이 되었다. 자동차는 빗물에 씻겨 재색 빛의 민얼굴을 말끔하게 드러내었다. 걱정했던 스크래치 부분은 자차보험 가입 이외의 항목을 선택했던 것이 운 좋게 적용이 되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까만 하늘을 이불 삼아 돗자리에 누워 쏟아지는 별 무리를 눈으로 담았던 만세 절벽, 발길 닿는 곳마다 우리의 여행지가 되었던 사이판은 두고 온 그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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