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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하단, 말 한마디    
글쓴이 : 김시현    20-05-28 11:03    조회 : 1,828
   미안하단, 말 한마디.hwp (15.0K) [0] DATE : 2020-05-28 11:03:02

잠실에서 교대 방향으로 가는 2호선 지하철 안은 한산했다. 조용한 공간 속에 여자의 비명은 짧고 강렬했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던 차에 누군가 흑당 버블티를 쏟은 모양이었다. 콩알 같은 알갱이들이 바닥을 통통 튀며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음료는 경로석 자리까지 흘러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버블티를 모르는지

커피를 들고 지하철 타면 안 되지!” 쏟은 음료가 발밑까지 흘러와 짜증이 났는지 점잖게 한마디 하였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어르신도 거들고 나섰다.

쏟았으면 처리를 해야지!” 여기저기 쏟아지는 비난과 질책의 소리로 지하철 안은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모였다. 짧은 머리에 재킷과 청바지를 입은 중년여성이었다. 조금 전 비명을 질렀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녀 옆에 앉은 백발이 희끗희끗한 할머니가 휴지를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마지못해 귀찮은 표정으로 휴지를 받아 들더니, 엉덩이를 무겁게 떼며 일어났다. 고마워하기보다는 어르신의 참견이 불편한 듯 표정이 밝지 않았다. 건네주는 휴지로 대충 바닥을 훔치고 앉았던 자리로 돌아갔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그녀의 행동을 뚫어지게 보고 있더니, .

아줌마, 제대로 바닥을 닦으세요.”라고 말했다. 핸드폰에 열중하던 그녀는 몇 정거장을 지난 후 내릴 준비를 하더니 건너편에 앉은 할머니에게

할머니는 나에게 휴지도 주지 않고 왜 간섭을 해요. 다른 사람은 휴지를 주며 도와주는데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내가 아줌마 사정을 어찌 아느냐? 휴지가 없으면 도움을 요청해서 처리하는 게 맞지 않아요?” 하며 서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지하철 안은 흘린 음료보다 두 사람의 언쟁으로 혼란스럽고 시끄러웠다. 엎질러진 버블티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시시비비가 일어났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구경꾼 신세가 되었다. 그녀는 음료를 쏟아 놓고도 당당한 이유는 무슨 이유였을까?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서 화가 났을까? 너무 당황하고 미안해서 오히려 화가 났을까? 사람들의 간섭 때문이었을까? 누군가 아무 말 없이 바닥을 훔쳤다면 조용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녀는 미안해했을까? 고마워했을까? 나에게 휴지가 있었다면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나도 그녀처럼 음료를 흘렸다면 저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당황하고 민망하여 미안함이 먼저였을 거 같았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점들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쳐 갔다. 말 한마디가 주는 느낌은 많은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녀에겐 미안합니다한마디가 어려웠던 걸까?

 

누군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또한 상황에 따라 음료 반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부득불 사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

 

버스를 타면 음료 반입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하철에서는 음료 반입을 하여 여객들에게 불쾌감이나 위험 등의 피해를 줄 경우는 밖으로 나가게 할 수도 있다는 법령을 찾아보았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법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음료 반입을 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녀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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