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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운 이웃    
글쓴이 : 김시현    20-05-28 11:00    조회 : 1,512
   고마운 이웃(9).hwp (16.0K) [0] DATE : 2020-05-28 11:00:49

얼마 전 주일에 교회 지인들을 초대하여 모임을 했다. 교회와 집이 가까워 사람들이 자주 오는 편이었다. 나는 집에 사람들의 북적거리는 소리가 좋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한 끼 밥을 먹으며 주고받는 정이야말로 나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주메뉴는 한방 삼계탕을 정했다. 삼계탕과 어울리는 깍두기를 미리 담으려고,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길에 무 하나 달랑 살 생각으로 마트에 가게 되었다. 채소 판매대를 가는 도중에 잔뜩 쌓여 있는 과일 가판대 앞에는 마이크를 잡은 청년이 신나게 홍보를 하고 있었다.

사모님들 지금 사 가시면 대박입니다

골라

골라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운수대통하는 날

 

나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청년의 소리에 발을 떼지 못했다. 퇴근길 피곤한 몸과 마음이 스르르 녹아들었다. 젊은 청년이 삶을 진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미소까지 퍼졌다.

과일 앞에 몰려든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며 손놀림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라도 크고 좋은 것을 주워 담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나도 그 틈을 살짝 비집고 들어가 재빠르게 참외 한 봉지를 주워 담았다. 과일을 고르던 손과 손이 부딪히면 겸연쩍어 씩 한번 웃어주고 다시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이크를 잡은 청년은 신이 난 듯,

 

골라. 골라를 외칠수록 아줌마들이 가판대로 모여들었다. 적극적인 여성, 고객들 틈에 남자들은 고개를 빼꼼히 내밀다 떠밀려 뒷걸음을 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는데 극성맞은 아줌마들이 얄밉지가 않아 웃음이 나왔다.

 

노란 참외를 바구니에 넣고 보니 빨갛게 익은 복숭아가 눈에 들어왔다. 한 입 베어 물면 금방이라도 단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먹음직스러운 자태로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눈웃음을 치는 것 같았다. 동그랗고 예쁜 복숭아를 담고 보니, 이번에는 붉은 체리가 손짓하는 듯했다. 무 하나 사려고 했던 처음 계획은 사라지고 형형색색 이쁜 옷을 입은 과일들만 가득하였다. 대형마트에서 종량제 봉투 2개를 사서 나누어 담았다.

엄마는 무겁다면서 뭘 그렇게 많이 사요?” 계산하고 밖으로 나오니 딸애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늘 마트에 가면 자제력을 잃는다며 핀잔을 주던 딸의 말을 잠시 잊기로 했다.

 

양손에 든 짐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몇 발자국 걷다가 어깨와 팔이 아파 걷다 쉬기를 반복하며, 힘겹게 걷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무거워 보이는데 봉투 하나 들어 줄게요

봉투 중 무거운 걸 나에게 주세요

뒤에서 무거워 낑낑거리는 나를 보고 도와주겠다는 아저씨에게 나는 사양하고 싶지 않았다. 고맙다며 인사를 건네고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학창 시절, 교과서를 넣은 가방은 작은 체형인 나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면 언제나 앉아있던 어른들이 받아주었다. 나 역시 수레를 끌고 가는 어른들을 보면 쫓아가 뒤에서 밀어주었다. 언제부턴가 그런 도움을 받거나 주는 것이 어색해졌다. 남을 돕는 것조차 상대가 좋아할지 싫어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는 사이 어느새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다. 나는 아저씨에게 천도복숭아 두 개를 건넸다. 아저씨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억지로 아저씨의 손에 안기니 그제야 받아 갔다. 과일을 받아 들고 가는 아저씨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정이 메말라 가는 요즈음 보기 드문 아저씨를 만나 가슴이 따뜻해져 왔다.

 

인터넷 뉴스를 보면 안타까운 뉴스를 접하게 된다. 무관심과 외로움에 소외된 연예인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가슴이 아플 때가 있었다. 이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나 또한 직장동료, 교회 교우들과, 지인들을 아는 정도이다. 사람들은 무관심과 외로움에 정에 굶주려 있거나 마음의 문을 닫고 살고 있다. 인터넷 뉴스에서만 보았던 사건이 가까운 주위에서도 일어나 문상을 다녀온 적이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사건 사고가 현실감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관심과 정을 그리워하고 있다.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다. ‘혼밥이나 혼술이라는 나 홀로 문화가 생겨난 것은 사회의 변화가 낳은 현실이지만, 고마운 이웃을 만난 날처럼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이 있어 힘이 되고, 다른 이에게 또 힘을 불어넣어 주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사람들을 초대하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풍경에서 정을 찾고 마음을 찾기 위함이다. 준비한 한방 삼계탕과 아삭아삭하게 잘 익은 깍두기, 참외, 천도복숭아, 체리까지 풍성한 식탁이 차려졌다. 밥상에 둘러앉아 한방 삼계탕과 깍두기에 대한 얽힌 사연으로, 이야깃거리가 있는 즐겁고 풍성한 모임이 되었다. 행복은 웃음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일상에서 고마운 이웃을 만나고, 이웃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삶의 풍성함이 전염되는 따뜻한 온도로 가슴을 채워주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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