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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고와 소녀    
글쓴이 : 김시현    20-05-28 10:57    조회 : 1,513
   탱고와 소녀.hwp (21.5K) [1] DATE : 2020-05-28 10:57:57

동네와 떨어진, 담장과 맞붙은 초등학교는 8개 부락에서 학생들이 통학했었다. 학교를 사이에 두고 버스정류장 옆에는 이발관, 채소를 파는 가게, 쌀집, 문방구와 도서, 잡화를 파는 소녀의 가게가 모여 살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참새 방앗간 지나가듯 소녀네 가게에 들렀다. 가게 일로 바쁜 엄마를 위해 집안일을 도와주는 외사촌 언니와 단짝이 되어 친하게 지냈다. 언니는 놀러 다니기에 바빠 소녀를 챙겨주지 못했다. 외사촌 언니는 소녀를 부를 때마다 이름을 두고 여우야이렇게 불렀다. 소녀를 데리고 읍내 목욕탕에도 데리고 가고 영화도 보여 주었다. 언니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엄마를 잘 따르고 좋아했다. 사촌 언니는 혼기가 차서 엄마가 중매한 사람에게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밤새 울었고, 소녀의 집을 떠나게 된 날,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하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외사촌 언니가 떠난 이후 집안일은 언니 몫이 되었다.    

소녀의 형제는 두 살 터울로 큰오빠, 언니, 작은오빠, 7살 터울인 여동생으로 다복한 가정이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작은오빠를 따라다니며 오빠 친구들 틈에 끼어 제기차기, 칼싸움, 술래잡기 놀이를 하였다. 술래가 되는 날은 작은오빠가 대신 술래가 되어 주었다. 학교 운동장에 가서 그네 놀이와 손수레에 태워 버스 놀이도 시켜 주었다. 저녁 밥상을 치우고 나면 식구들이 둘러앉은 방에서 여동생의 재롱을 보며 웃음꽃을 피웠다. 작은오빠처럼 친구들에게 놀러 갈 때마다 동생을 데리고 다녔다. 동생이 자라 소꿉놀이를 하며 함께 보내는 날이 많았다. 나란히 누워 노래도 부르고,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사이였다. 작은오빠와 언니는 자주 싸웠다. 감기를 달고 살던 소녀는 폐렴을 앓다가 폐결핵이 되었다. 소녀가 약을 올려도 아프다는 이유로 양보도 잘하고, 정이 많은 오빠는 비위를 잘 맞추어 주었다. 다투어도 혼이 나는 건 작은오빠에게 벌칙이 가해졌고, 소녀에게 원망하지 않고 억울해하지도 않았다.

초등학교를 내 집 드나들 듯 편하게 다녔던 소녀는 70년대 읍내 언덕에 자리 잡은 여학교에 버스를 타고 다녔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이슬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혼자 비를 맞으며 사색에 빠지고 싶었다. 비를 맞을 용기가 필요한 날이었다. 비를 맞을 때는 설레고 좋았지만, 계속 내리는 비는 잦아들지 않았다. 비에 흠뻑 젖은 소녀를 보고, 놀란 건 엄마였다. 급히 소녀를 아랫목 구들방으로 눕게 하였다. 밤새 고열과 심한 기침으로 밤잠을 설쳤고, 아침이 되어 책가방을 챙겼다. 가족들은 결석하라고 권유했고, 엄마는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학교 갈 수 없는 상황을 보고했다. 가족들의 걱정을 알면서도 4km 거리가 되는 빗속을 뚫고 우산도 없이 걸었다. 차비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불시에 소녀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며 택시비 정도의 용돈을 챙겨 주었었다. 고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건만, 사춘기 감성에 빠져 비를 좋아했다. 학교가 끝나면 주먹만 한 핫도그를 20원 주고 사서 먹기도 하였다.   

아침 밥상에서 밥을 먹으며 큰소리로 오빠 오늘은 나 자전거 타고 갈 거야말하는 날은 엄마에게 버스를 타지 않겠다는 통보였다. 비가 오는 날은 걸어 다니던 학생들도 버스를 이용하였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서 견딜 체력이 아닌 것을 알고 엄마는 아버지에게 택시회사에 전화를 걸어 택시를 부르라고 하였다. 아버지가 도마초등학교 앞집앞으로 예약을 하면 자동차로는 5분 거리에 있던 택시가 금방 왔다. 버스를 기다리던 어른들도 택시가 도착하면 자리를 채웠다. 기본요금과 상관없이 왕복 택시비를 개인당 택시 요금을 지급했다. 소녀는 버스보다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동도마, 중도마, 서도마에 사는 3명의 친구와 단짝이 되어 다른 친구들이 4명 팀에 끼고 싶어 했다. 친구들이 함께 걸어 다닐 때가 종종 있었다. 소녀의 집을 지나치는 친구들은 소녀가 버스를 타고 다니기에 부르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소녀의 집은 창문이 많았다. 창문으로 지나가는 친구들을 발견하면, 엄마 눈을 피해 버스를 타지 않고 오빠 자전거를 이용하였다. 오빠 자전거에 타고 가다 먼저 가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자전거에서 내렸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친구들과 걸어가는 게 좋았다. 작은오빠는 동생 잘 챙기라는 엄마의 성화에 익숙하여 소녀를 잘 보살폈다. 소녀가 늦은 날은 동생을 태우고 학교 언덕길을 힘들게 페달을 밟았다. 소녀가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남학교를 향해 언덕길을 잽싸게 내려갔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을 바라보기도 하고, 혼자서 책을 읽으며 문학소녀처럼 가슴 설레기도 하였다. 담임선생님에게는 엄마가 학교를 찾아가 소녀의 건강 상태를 충분히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다. 친구들은 소녀가 폐결핵인 줄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건강이 안 좋은 정도로만 알았다. 기침이 심할 때도 감기 정도로만 알았다. 병원에는 정기적으로 가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의 추천으로 보건소에 하루걸러 다녔다.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고 친구들 눈을 피해 다니는 것이 부담되는 일이었다. 친구들에게 들켜서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나쁜 짓 하다 들킨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일주일에 3~4번은 엑스레이 사진을 찍고, 엉덩이에 큰 주사 2대를 맞았다. 보건소에는 남자 의사가 주사를 맞혀 주었다. 치마를 걷어 올리고 엉덩이 주사를 맞는 일이 창피하였다 

소녀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이 들려주는 남학생 소식과 수다 떨며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다. 무더운 여름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날은 아스팔트의 더운 열기에 숨이 차오르며 검붉은 핏덩이가 목으로 넘어왔다. 각혈 때문에 가지고 다니던 손수건으로 재빨리 친구들 몰래 핏덩이를 받아 내었다. 핏덩이를 훔친 후에도 들키지 않기 위해 태연하게 행동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소녀는 친구들과 아카시아 잎사귀 놀이도 하고, 자전거 타고 통학하는, 좋아하는 남학생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음악 시간에 배웠던 노래도 부르며 장난을 쳤다. 장난기 많은 남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가며 따르릉따르릉자전거 벨을 누르며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피하는 시늉을 하면, 짓궂은 남학생은 일부러 따르릉따르릉벨을 크게 누르며 다가왔다. 피하다 넘어지면 남학생은 크게 웃으며 페달을 밟고 휙 도망쳐 버렸다. 그럴 때마다 소녀는 가슴이 콩닥거렸고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였다.   

소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날은 엄마는 오늘 각혈은 안 했나?” 하고 걱정되어 물었다. 학교에서는 목을 간지럽히는 가래와 잦아드는 기침만 심했고, 각혈은 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지 않고 도보로 하교하는 날은 엄마 잔소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잔소리를 싫어하는 아버지는 엄마에게 한마디 건네다가 예민한 엄마와 말다툼이 오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소녀는 죄지은 심정이 되었다.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 뒷날은 버스를 타러 혼자 터벅터벅 터미널로 가는 게 고역이었다. 친한 정재에게 대신 버스 회수권을 내어 줄 테니 같이 타고 가자고 사정하기도 하였다. 버스 회수권은 한 달 치를 끊으면 할인이 되었다. 현금으로는 30원을 내고 다녔고, 회수권은 25원이었다. 엄마가 끊어 주기도 하고, 작은오빠가 끊어주기도 하였다 

어느 날, 학교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하얀 오리 두 마리를 데리고 왔다. 집에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새 식구 오리가 들어와 가족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침이 되면 뒤뚱거리며 집 앞 하천으로 내려가 놀았다. 오리들은 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두 마리의 오리는 자라 몸집이 큰 오리가 되었다. 창고에 사용하지 않는 개집 안에 들어가 알을 낳았다. 작은오빠는 소복이 쌓여 있는 알을 발견하였다. 소녀와 아침마다 오리알을 서로 꺼내오려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였다. 언니는 오리알로 두꺼운 카스텔라도 만들고, 도시락 반찬도 만들어 주었다. 아침이면 소녀의 가게는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 차 엄마와 아버지는 손이 모자라게 바빴다.

엄마는 폐결핵에 좋다는 온갖 약과 처방을 주워듣고 왔다. 여름날 대청에 드러누워 있는 소녀를 일어나라고 하였다.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검은 물 같은 액체를 주며 꾹 참고 단숨에 마시라고 했다. 마시지 않겠다는 소녀에게 엄마와 언니는 붙잡고 입으로 억지로 넣었다. 비릿하고 미지근한 맛은 역겹고 토할 것 같았다. 입안으로 들어간 액체는 다시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남은 시뻘건 검은 액을 엄마는 소녀에게 다시 먹이려고 두 오빠를 불렀다. 두 오빠와 언니는 소녀를 꼼짝 못 하게 팔다리를 잡고, 가슴을 누르고 입안에 다시 밀어 넣었다. 목으로 넘어오는 것을 코를 막고 기어코 마시게 했다. 넘어가는 걸 보고 안심했는지 얼른 사탕을 까서 입에 넣어 주었다. 소녀가 마셨던 것은 집에서 식구처럼 키웠던 생오리 목에서 나왔던 피였다. 엄마는 폐결핵은 잘 먹어야 한다.”며 온갖 음식을 만들어 먹이기도 하고, 얻어 오기도 하였다. 육개장이라고 속여 멍멍이탕도 먹었다. 언니는 소녀를 지독하다.”고 놀렸다.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X-ray를 통해 폐의 상태를 진료받았다. 병원에서는 휴학과 요양을 권유했다. 휴학과 요양을 하라는 권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의사의 권유에 엄마는 휴학하라고 했다. 결국, 집안에서 회의가 열렸고 아버지와 가족들은 소녀의 편이 되어 주었다. 엄마는 마지못해 고집을 꺾었다. 학교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여 휴학은 없었던 일로 결정되었다. 소녀의 휴학 경험은 잦은 폐렴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휴학하였었고, 그다음 해에 다시 입학하였던 경험이 있었다. 소녀는 학교 다니는데 숨이 차는 것 이외에는 견딜 만하다고 했다. 기침도 겨울이 아니면 심하지 않았다. 여름에는 피가 넘어오고, 겨울이면 기침이 심해 공부 시간에 쉬지 않고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에, 창피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녀는 학교생활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중도 포기하면 영영 학교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휴학한다고 폐결핵이 완치될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의사는 난감해하며 수입도 어렵고, 약값도 비싼 독일 폐결핵약을 소개했다. 소녀는 의사가 소개해준 약을 하루에 3번씩 30알씩 먹은 결과 폐결핵이 호전되었다. 치료도 게을리하지 않고, 먹는 것도 부지런히 챙겨 먹었다. 몇 년간 꾸준히 치료를 받고 엄마가 해준 음식때문 인지 소녀는 폐가 좋아졌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엄마와 두 손을 잡고 뛸 듯이 기뻐했다. 병원을 갈 적마다 보호자와 동행하라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바쁜 가게 일을 뒤로한 채 소녀와 함께 병원에 다녔다. 엄마는 이제 안심이다.”라고 말했다. 담당의한테 엄마와 소녀는 고맙다고 인사를 몇 번이나 하였다. 담당의는 그 대신 완쾌되었다 하더라도 재발 우려가 있으니, 2~3년 동안 계속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극진한 엄마의 정성과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정기검진을 받을 때마다 재발은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는 폐결핵을 앓았던 외삼촌을 먼저 보낸 아픔 때문에 폐결핵에 대해 민감하였다. 딸까지 잃을까 봐 마음을 놓지 못하고 노심초사하였었다. 엄마의 유별난 관심이 없었다면, 소녀의 존재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장시간 약을 먹은 결과 위가 좋지 않았다. 위장을 보호하기 위한 약과 비타민제가 늘어날 때마다 군소리 없이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 지독하게 약도 잘 챙겨 먹고, 그 힘든 시간을 잘 견디었다며, 장난기 많고 정이 많은 작은오빠는 대견하다고 오뚝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소녀는 숙녀가 되어 직장생활도 잘하였다. 성장기 때 앓았던 폐결핵의 후유증으로 척추측만증이 생겼다. 정형외과 담당 의사는 CT 촬영과 MRI를 통해 척추측만증으로 2개의 척추뼈가 튀어나와, 척추 사이가 붙어 있다고 하였다. 다른 척추가 근육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다고 하였다. 운동하지 않으면 계속 휘어질 우려가 있고, 장기가 아래로 처져 있어 누른다고 하였다. 허리통증과 장기를 누르는 후유증 때문에 의사가 염려했던, 장폐쇄 수술을 받았다. 정형외과에서 추천하는 등산, 마라톤, 수영, 암벽등반, 검도, 국선도를 번갈아 가며 척추와 장에 좋은 운동을 하였다. 여러 가지 운동을 하였지만, 휘어진 척추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에겐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렸다. 즐겁게 운동하며 질리지 않고, 척추를 바로 세워주는 것을 찾은 것이 ‘아르헨티나 탱고’ 였다. 시간이 지나 허리 디스크까지 생겼다. 교정을 위해 도수치료도 받았지만, 기대 이상으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탱고’를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 하였던 결과로, 한쪽으로 튀어나와 곱사등 같았던 등은 균형을 찾아 등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하여 좋아졌다. 구부려 머리 감기도 힘들었던 허리에 근육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본고장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미 파킨슨병으로 치료를 하는 사례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파킨슨병과 치매에도 큰 효과를 보았다는 어느 의사의 논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척추의 눌림으로 인한 허리 통증과 손발이 저림도 좋아졌다. 치료목적으로 시작했던 춤은, 인생의 즐거움까지 덤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탱고를 통해 까칠했던 그녀의 성격은 강한 물살과 오랜 시간으로 모서리가 닳아 둥글어지듯 원만하게 변하였다. 자신만을 위해 옹졸하게 걸어왔던 길이었다면, ‘매너의 춤’ ‘탱고’를 통해 상대를 존중하고, 격려하고 배려하는 것을 배웠다. 45도로 굽어 있던 등이 바로 세워지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다른 운동에 비해 후유증도 없었다.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 ‘탱고’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녀에겐 ‘탱고’가 ‘제2의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다.

참고

http://blog.naver.com/opusbook/150097237323

치유와 회복의 춤 탱고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070816#

탱고 출


김시현   20-05-28 10:59
    
글이 길어서 다 올라가지 않네요
웹지기   20-05-30 17:03
    
끊긴 부분 연결했습니다. 수정 과정에서 혹 누락되거나 변경된 부분이 있으면 댓글 남겨주세요.
김시현   20-06-04 18:1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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