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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함의 이데아    
글쓴이 : 정양이    19-09-22 17:52    조회 : 672
   착함의 이데아.hwp (80.0K) [0] DATE : 2019-09-22 17:52:25

                                                       착함의 이데아

 

                                                                                                                   정양이

 

  찻길. 앞차의 창문이 열리더니 손가락 사이에서 퉁겨져 나온 하얀 담배꽁초 하나, 아스팔트로 단장된 길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실낱같은 연기는 똬리 튼 뱀 대가리처럼 일어나 조금 전 교감하던 손가락을 찾아 허공을 더듬는다. 메케하게 품고 있던 푸념들이 자동차 안에서 꿈틀거리다 열린 창문을 통해 먼저 뿜어져 나온 뒤 뻔뻔한 손가락에 의해 버림받은 유기 꽁초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주고받았을 뜨거운 교감을 무참히도 바닥에 팽개치는 순간이다. 그 손맛을 잊지 못하고 가느다란 연기를 끈처럼 늘여 이어보려는 노력이 무참히 바퀴에 으스러진다. 무지막지한 타이어를 장착한 자동차는 진한 매연을 품어대며 납작하게 일그러진 볼품없는 담배꽁초를 버리고 담배 끝을 달구던 불빛 같은 신호에 투덜대고 있다.

  뭐야 저 사람, 기본이 안 돼 있군나는 덩달아 쓰레기가 되는 불쾌함으로 얼굴이 붉어지는 순간이다순식간에 도시 전체가 재떨이 위에 올라앉은 기분으로 앞차를 노려본다생각대로라면 차에서 내려 사그라드는 연기로 미련을 달래고 있을 꽁초를 집어 열린 차 안으로 던져 넣고 싶다.

  그도 유년기에는 넌 참 착하구나라는 칭찬을 받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마을 어귀에서 지나가는 동네 아저씨에게 큰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인정받는 것에 희열을 느꼈을 것이다. 이미 유년을 벗어나 뒷골목을 전전하는 이들이 던져놓은 휴지를 집어 가까운 휴지통을 찾으며 자긍심을 드러내기도 했을 것이다. 유아가 아동이 되고 아동이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이 장년이 되어가면서 굳어져 가는 인지를 통해 착함을 앞가림으로 장착하기도 하고 혹은 휴짓조각처럼 훌쩍 던져놓기도 한다.

  출근길에 승강기에서 만난 초등학생이 선생님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한다. 유치원 졸업생이다. 반갑게 마주 인사하며 떠올린 초년시절, 등하굣길은 물론 동네 길에서 선생님이 보이면 큰 소리로 부르며 인사를 했었다. 먼발치에서 선생님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줄 때 우쭐했던 기억이 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치 담장 밖에서 선생님이 나를 보고 있다는 듯 행동거지를조신하게 하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으로부터 받는 관심은 아이들이 자라나는데 양질의 자양분으로 작용한다. 그 자양분을 받으며 아이들은 인사 잘하고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아이로 불리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실 대청소를 하던 날. 교탁을 옮기며 고사리손으로 쓸고 닦으려는 순간 주워든 10원짜리 동전. 선생님은 동전을 내미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주인 없는 돈이니 사탕이나 사 먹으라고 즉시 보상해 주셨다. 친구들 손을 잡고 학교 앞 점방에서 나눠 먹었던 눈깔사탕은 물건을 주우면 반드시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어정쩡하게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유년의 아이들은 공손한 인사와 교과서적인 도덕을 내보이며 어른의 칭찬을 받고 자란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나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은 선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동기부여의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자라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민망함이 여드름처럼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외면하는 기술을 터득해간다. 그때부터 착한 아이라는 굴레가 부담스러워 벗어 내려 한다. 유년의 순수에 덧칠한 가치관의 혼돈이 엮어낸 낯가림을 걸치는 것이다. 머쓱한 표정으로 먼저 건넨 인사에 머리만 긁적거리는 관계의 벽이 가로막는다. 어정쩡한 자아로 무장하면서 세월이라는 뒷주머니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염치없음이 청소년의 사춘기를 옹호하게 한다. 양심의 부재가 슬슬 영글어간다.

 

  그것도 잠시, 신호는 바뀌고 바쁜 자동차들은 앞다투어 제 길을 따라 달려간다. 혼자서 부글거리며 갑론을박으로 흘러가는 내 생각을 뒤엎으려는 듯 경적이 울린다. 다만 도덕적 해이에 쌓여있는 앞차를 놓치지 않으려 뒤쫓아 간다. 얼굴이라도 한번 봐 줘야할 것 같은 생각으로 차 꽁무니만 노려본다아랑곳하지 않고 이리저리 차선을 바꿔가며 뛰어가는 앞차

 

  그렇다고 나는 성인군자인가? 아니다. 나 역시도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선 이럴까 저럴까. 줄까 말까, 할까 말까 로 시소를 탈 때가 종종 있다. 이 하면 륜이요, 가 하면 맨스라는 말을 떠올리며 등잔 밑이 어두운 현실에 눈감고 타협하는 생각의 연금술사가 되기도 한다. 스스로가 그럴진대 타인의 모습을 주관적으로 따지지 말자면서도 어쭙잖은 잣대를 들이대던 나는 이쯤 해서 뒤로 물러 선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여 사람의 마음이 본래 선함을 주장했다. 역으로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하면서 삶의 과정에서 선해지는 과정임을 피력했다. 성선이든 성악이든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보고 있다는 의식 속에서는 행동의 제약을 받는 것이다. 그것마저 무시하고 살아가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의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그가 완벽한 타인일 때 신경 쓰지 않고 자행하는 비사회적 행위를 망설임 없이 저지르기도 하지만, 바라보는 이가 지인이거나 자신의 인격 조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라면 주춤할 것이다. 전시효과를 노리며 친 사회적 행위로 바꾸기 위해 저울질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누군가의 눈길로 인해 행위를 조절하고 손바닥을 뒤집고 얼굴색을 바꾸어 살아가면서 자신은 임기응변에 능하다고 둘러대기도 한다.

  담배꽁초 투기에 대한 벌은 범칙금과 벌점으로 법령화되어있다. 그러나 저 차량의 주인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우리 모두를 쓰레기로 만들며 버젓이 길바닥에 피우던 담배꽁초를 버렸다. 어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면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독불장군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을 통해 암실에서 자행되는 부조리와 모르쇠로 일관하는 공직자들의 무관심을 보았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덮어버리고 둘러대면서 그들끼리 나라의 주권을 상쇄시키는 암실 행정에서 관계의 벽은 철옹성처럼 높아만 가고 벽 뒤로 숨는 관계자들의 자구책들은 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지난 일이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떳떳하지 못한 일들이 밝아오는 사회에서는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어른이 어른다워지는 사회, 내 아이들이 항상 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조심해야 한다 (君子)’는 성인의 말씀을 되새겨 도덕적 의무를 내면화시키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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