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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번의 봄    
글쓴이 : 김정희 투    19-04-25 21:46    조회 : 4,603

 

또 한 번의 봄

김 정 희

 

얼마 전 KBS 가요무대에서 가수 박재란 씨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여전히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산 너머 남촌에는밀짚모자 목장아가씨를 들려주었다. 너무 오랫동안 듣지 못한 노래였는데 정말 반가웠다. 칠십 년대 불러졌던 이 노래는 해마다 봄이 오면 생각나고 따라 부르고 싶은 봄의 전설과도 같은 노래였다. 박재란 씨는 고난과 역경 속에 오랜 미국생활을 끝내고 이제 우리 곁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산 너머 남촌에는은 김동환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로 특히 노랫말이 너무 곱고 지금 들어도 세련된 가사와 멜로디여서 우리 딸도 듣고 나서 정말 그렇게 오래된 노래였냐고 물었다.

여름방학 때면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산 너머 어딘가에 정말 나만의 유토피아가 있을 것 같아 지그시 눈을 감고 수많은 상상의 나래를 펴며 행복해 하기 도 했었다. 특히 이 노래는 가수 박재란 아니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노래이기도 하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노래들이 나왔지만 지금도 나는 이 노래를 듣고서야 봄이 왔음을 느끼곤 했다.

 

봄이 되어 베란다를 청소 하면서 화분을 정리하다보니 영산홍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맺혀있던 꽃봉오리에 물이 오른 듯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옆에 씩씩하게 자란 사랑초도 조금 있으면 하얀 꽃이 필 것 같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작년 여름 영산홍이 다 지고 베란다에 지저분하게 꽃잎이 떨어져 한참을 허리 굽혀 청소 하며 힘들다고 혼잣말을 했었다. 내가 물을 주고 관심 가져 키운 영산홍에게 아픈 상처를 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얼른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나 영산홍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올 봄에도 귀한 생명을 키워내 나에게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몇 년 전 동네 화원에서 파랑색 플라스틱 화분에 예쁘게 피어있는 분홍색 제라늄을 구입했었다. 눈에 익숙한 꽃인데 직접 키워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키우는 방법도 까탈스럽지 않아 화분흙이 마르지 않게 한번줄 때 듬뿍 물만 주면 계속 꽃대가 올라오면서 에쁜 꽃을 피워냈다. 겨울에도 추위를 잘 이겨내고 활짝 핀 제라늄을 보면서 금방 봄이 오려나 설레기도 했었다. 봄이 되어 제라늄 옆에 우아하고 품위 있는 동양란을 선물 받았다. 잘 키워내기 위해 온통 신경을 란에게만 쏟아 부었다. 제라늄에게는 눈길도 덜 가고 물주는 것도 게을리하였다. 더운 여름이 되자 제라늄 잎이 노래지면서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았다. 잎도 다 떨어지고 플라스틱 화분엔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었다. 옆 자리에 새로 들여온 동양란에게만 온갖 정성을 다한 것을 제라늄은 알고 있었을까? 살아있는 생명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의 이기심이 회한으로 남는다.

 

어렸을 때 엄마 손 잡고 외할머니 산소에 다녀온 추억이 있다. 양지바른 산등성 무덤가에 할미꽃이 피어있었다. 꽃도 안 피었는데 허리를 굽히고 있는 모습이 너무 슬펐다. 엄마는 할미꽃 옆에 자라난 풀을 뽑으며 외할머니 무덤 앞에 엎드려 한없이 울었다. 지금도 내 추억 속에 자리 잡은 할미꽃은 엄마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집 뒤로 난 산책로를 걸으며 겨울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길옆 아파트 베란다 끝에 있는 커다란 까치집에 호기심 어린 시선이 가곤 한다. 양쪽으로 늘어선 큰 가로수에 까치집도 많이 있는데 왜 하필 아파트 베란다에 집을 지었을까? 혹 새끼는 낳았을까? 들리는 얘기로는 3년째 비어있는 까치집 이라고 한다. 집만 지어놓고 오지 않는 까치를 기다려 주는 마음 따뜻한 아줌마의 정을 느낀다. 며칠 전 딸애가 전화를 걸어와 그 아파트 까치집 지금도 그대로 있어요?” “올 봄에는 까치가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까요 ?”하고 묻는다. 정말 텔레파시가 통하는 걸까?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떨어져 있는 우리 딸도 똑같은 생각을 떠올리면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해마다 계절은 바뀌어 봄은 다시 오지만 젊었을 땐 일에 짓눌려 봄이 오는 것도 잊고 살았다. 나이 들어 이제는 봄을 맞는 의미가 더 새롭게 느껴진다. 또 한 번의 봄을 맞게 됨은 살아 있기에 얻은 큰 행운이기 때문이다.

 


문영일   19-04-26 11:49
    
또 한 번  봄을 맞으신 단상이군요.
아주 좋습니다.
박재란의 산 넘어 남촌. 
고향집 툇마루.
베란다의 제라늄.
할머니 산소의 할미꽃
아파트  베란다 끝의 까치집.
젊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봄을 지금 맞는  봄의 의미가 새롭다는 게 주제라고생각됩니다.

그러면 툇마루에서. 외할머니 산소에서 느꼈던 봄도 어릴 때였고
그때 느꼈던 서술도 애틋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  '일관성'이 다소 떨어진  느낌을 받게됩니다.

저는  그래서 한 두 줄의 '주제문'을 먼저  써놓고 글을 씁니다.
주제와 상관 없는  소재나  문장은  과감히 버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  주제를 물고 늘어지려고 하지요.

님은  서술 , 묘사. 문장력이  남보다 뛰어나  글이 술술 읽히게되는 가독성이
높습니다.

축하합니다.
벌써 6개의 글  '완' 받으셨네요. 대단합니다.
김정희 투   19-04-26 13:13
    
바쁘신 일정중에도 댓글 까지 남겨주시니 선생님의 깨어있는 열정에  감사드립니다. 많이 노력해 볼깨요. 
즐거운 여행 되세요~
공해진   19-04-26 14:19
    
이전 글 올린신 걸 지났쳤습니다. 죄송!

남도의 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샘만의 서정을 계속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파이팅!
김민지   19-04-26 16:56
    
봄바람 같은 선생님의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그윽한 향기가 나는 듯도 하고요...저도 닮고 싶어요^^
김정희 투   19-04-26 19:06
    
공해진선생님 위로와격려 감사드려요. 항상 제 자리에서 즁심을 잡아주신 선생님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민지님이 우리분당반에 들어와서 봄향기가 물씬나네요~워낙 어휘력이 뛰어나서 감탄하고 있어요
계속 건필하세요~
이화용   19-04-26 21:23
    
합평하는 독자들의 의견에 너무 어려운 숙제를 하시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샘의 실력이 출중하고 기대가 크서 그렇다고 여기시고
다시 찾아온 봄을 맘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계속 선생님의 글을 기다리겠습니다!! &&
김정희 투   19-04-27 12:39
    
최선을 다해서 답글 달아주시는 선생님들 존경합니다.
이화용선생님의 순수한 감성에 항상 마음 따뜻해집니다.
감사해요~~
박재연   19-04-29 07:06
    
참으로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봄을 준비하고 맞아들이는 선생님의 섬세한 마음이 잘  읽혀졌습니다. 모녀간에 정서도 어찌 그리 잘 통하는지요 소울메이트?? ~~~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김정희 투   19-04-30 21:05
    
반장님 답글 이제 읽었어요~ 바쁘실텐데 감사해요~~
항상 테마가있는 반장님의 답글에 가슴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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