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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피문어    
글쓴이 : 김정희 투    19-03-29 21:58    조회 : 4,471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너무 오랜 시간 아버지를 잊고 살았다. 공직 생활과 농사일을 같이 하신 아버지는 오남매를 모두 대학 졸업까지 뒷바라지 해주셨다.

맏딸인 나는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바쁜 농사철에도 한 학기에 두 번씩은 딸을 보러 서울에 올라 오셨다.

기숙사 면회시간은 오후 6시에서 7시까지고 방송을 통해 각 방으로 연결 되었다. 화학 실험을 끝낸 후 지저분해진 가운을 손에 들고 힘없이 기숙사에 들어서면 목이 빠지게 딸을 기다리고 계신 아버지는 딸을 보자 너무 반가워 입을 못 다무셨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전남 장흥을 출발하여 광주에 들러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그 무거운 짐을 들고 신촌까지 버스를 타고 오셨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들어와 대학정문을 지나 언덕배기에 있는 기숙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힘들어 보이는 큰 가방에는 보따리가 세 개였다. 한 개는 반 건조한 피문어를 담은 바구니, 그리고 두 개의 보따리는 김부각과 소고기 볶음 고추장이다. 아버지는 반 건조한 피문어 다리를 가위와 가는 칼을 이용해 여러 가지 예쁜 모양으로 만들어 바구니에 담아 오셨다. 옛부터 예쁘게 오린 피문어는 제사상과 잔칫상의 꽃 이었다.

나는 아버지께 왜 힘들게, 오린 피문어냐고 물으면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정성이 많이 담긴 귀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고 말씀 하셨다.

예쁜 바구니에 담아온 말린 피문어는 사감선생님께 드리고 김부각과 고추장은 친구와 방 식구들과 나누어 먹었다. 사감 선생님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아버지가 면회 오신 그날은 밤 9시에 하는 각방 점호시간을 2시간 연장해 주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나를 종로 신신백화점 뒤에 있는 한일관에 데려가 노란 불판에 담긴 맛있는 육수 불고기를 사 주셨다. 아버지는 몇 점 드시다 말고 고기를 내 앞으로만 밀어 주셨다. 고기를 다 먹고 남은 육수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식사 하면서 아버지는 용돈은 부족하지 않냐고 물어 보신다.

그 당시 한 달 기숙사비는 삼천오백원이었는데 매달 칠천원을 보내 주셨다. 거의 시내 외출이 없다보니 용돈 쓸 일도 없었다. 아버지는 돈 관리도 확실하다면서 칭찬해 주셨다. 시간이 촉박하여 나는 기숙사로 들어가고 아버지는 연희동 친척 집에서 주무시고 이튿날 새벽 일찍 시골 집으로 내려가셨다.

 

그즈음 아버지는 오십이 조금 넘은 연세였다. 흰 머리도 늘어나고 얼굴에 주름도 패이고 허리도 조금 구부정해지셨다. 아버지도 많이 늙어가고 계셨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거대한 산이었고 항상 그 자리에 굳건히 서 계실 줄 만 알았던 철없는 딸이었다. 유난히 새침하고 애교도 없었던 나는 부모님께 감사해요, 사랑해요 라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소심한 딸이었다. 아버지는 32녀를 키우시면서 아들들에게는 무척 엄하셨고 딸 둘은 한없는 사랑으로 키워 주셨다.

 

학창 시절에 유난히 로버트 프로스트의 영문시를 좋아 했던 나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여자들도 반드시 전문직을 가져야 한다며 나를 이과를 선택하게 하셨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영문학은 너무 광범위해서 더 힘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으로서 집 안의 대소사와 자식들 뒷바라지로 너무나 힘들고 외로우셨을 아버지이따금 두 눈을 감고 양손에 호두를 만지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신 아버지를 볼 때는 가슴이 철렁 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른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부모님의 노고를 덜어 드리고 싶었다.

 

자신의 건강은 돌볼 틈도 없이 바쁘게 사신 아버지는 환갑을 한 달 앞두고 급성 심근 경색으로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시다 돌아 가셨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주위의 친척 분들은 오빠와 내가 어머님 모시고 동생들 뒷바라지 해야하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매몰찬 말에 가슴이 더 아팠다. 오랫동안 슬퍼할 수도 없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엄마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너무나 변해버린 세상인심에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오빠와 나를 의지 하며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사셨다. 어느 날 엄마는 허리를 크게 다쳐 오랫동안 치료를 받으셨다. 휠체어에 엄마를 모시고 병실을 오가며 아버지를 너무 일찍 보내드렸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아팠다. 부모가 자식에게 온 몸 바쳐 베푼 것은 당연하고 부모가 조금이라도 못 마땅한 점이 보이면 바로 따지는 못난 딸이었다.

 

아버지 기일 때면 반 건조한 피문어 다리를 동생들이 큰 가위로 오려서 조그만 접시에 올려놓는다. 손이 아파 예쁜 모양은 엄두도 못 낸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구니에 담을 정도의 양이면 아버지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사감 선생님이 치아가 안 좋아 싫어한다고 꾀를 냈으면 아버지도 한두 번 정도에 그치지 않으셨을까?

 

어느 날 결혼한 큰딸에게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해줬던 것 중에서 제일 생각나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약국 하면서 항상 바빴고 아빠가 가끔 해줬던 달걀 비빔밥이라고 했다.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 뜨거운 밥에 흰자를 빼고 노른자만 터트려 쪽파 간장과 참기름을 부어 비벼준 밥이 그렇게 맛있었다며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엄마보다는 아빠에 대한 추억이 훨씬 많다고 했다. 조금은 섭섭했지만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남편 모습에 힘들게 피문어를 오려오신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졌다.

 


박재연   19-03-30 09:58
    
참으로 훌륭하신 아버지를 두셨네요.  아버지이자 멘토였으니 말입니다.
너무 일찍 가셔 안타깝지만
이렇게 추모하고 기억하니. 저세상에서나만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김정희 투   19-03-30 15:08
    
많이 바쁘 실텐데 박선생님의 댓글에 힘을 얻습니다.
감사해요~~
문영일   19-03-31 06:31
    
이 글은 제가  결석했을 때 내셨던 글이군요.
좀 꼼꼼히 보고  테클을 걸어보겠습니다.
제 의견일 뿐 참고만 하세요.

피문어.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말린  피문어.  밤 늦도록  그렇게 손이 부르트시도록
만들어서  기숙사까지 바리바리  싸오셨던 아버지.  피문어는 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지고지순한 사랑입니다.

단숨에 죽 읽었는데. 제일 마지막 문단에서  세 번  되돌아 읽게 되었어요.
물론 제 약한 독해력에 문제입니다만. 저 같은 독자를  위해 문장을 너무  길게 쓰지말고
짧게 쓰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화자 부부와 자녀들 이야기로  바꾸어  마무리를
지으셨는데, 이 글의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해서, 이 문단의 글을 짧게 짧게 써서 가독성을 높히셨다면  임팩트가  더 강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사족  하나.
중간 쯤 아들들에게는 무척 엄하셨고. 땰들에게는 사랑으로 라는 문장이 나오지요?
A 앞 문장과  B 뒷 문장을  댓구로 표 할때는  비교의 단어가 댓구가 되어야할 것
같아요. 이 문장에서  아들에게는  (엄격),  딸에게는 (사랑)보다는  딸에게는
엄격의 반대말, 일테면 관용적( 혹은 친절  )이 셨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아들들도 모두 사랑하셨지 않으셨겠습니까,
좋은 글 잘 보았어요.
김정희 투   19-03-31 16:11
    
문영일 선생님 정말 예리한 지적입니다. 엄격과 사랑을 두고 조금 갈등을 했어요.어휘력이 많이 딸려서요.
끝부분도 미진하다고 느꼇어요.저녁에 쓴글을 아침에 읽으면 이상하고 비오는날 쓴글을 다음날 화창한 날씨에 읽
어보면 너무 유치하게 생각되고...어렵습니다  감사해요.
     
문영일   19-04-05 07:00
    
너무나 당연한 말씀. 프로 작가님들도 글을 써놓고 된장 숙성시키듯
오래 묵혀둔데요.
다른 반에서 공부할때  교수님께 여쭌적이 있어요
글을 쓰신  다음 몇 번쯤 퇴고 하시는지.
  그랬더니." 글쎄요 보통 열다섯 번? 아니, 내 머리에서 "딸깍" 소리가 날때까지 고치고  고칩니다"하시더군요.
그러나 우리들은 배우는 학생들이니 어디에 당장 제출 .할  글이 아니라
배우려고 하는 것이니 ' 독자모독'이  되지 않는 한  빨리 졔출하여  합평받아보는 거죠.  물론 제 경우입니다.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후딱 써서  한 두 번 읽어보고 드르륵 인쇄하여 집을나설 때도 많아요. 선생님이나 문우들 께 좀 고쳐달라는  심보랄까.ㅎㅎㅎ
물론 글은  전철 타고 갈때나  다른 거 하면서 머리로 자꾸 써 보기는 합니다
지금 아주 잘 하고 계시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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