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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 이야기47    
글쓴이 : 이하재    20-09-17 12:27    조회 : 5,759
*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 이야기 *


47.
 코로나19의 재 확산으로 예방수칙이 강화 되었다. 마스크 착용은 의무사항으로 외출 시 단속되면 처벌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행으로 경제적 활동이 위축되어 대다수의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꼭 필요하지도 급하지도 않다면 외출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된다. 빈차로 운행 중 손님을 만나는 일은 대단한 행운이다. 손을 들어주는 손님과의 눈 맞춤은 짜릿하다.

 오후 다섯 시 무렵 강남세브란스병원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손짓을 하는 할머니를 보았다. 교차로를 통과하느라 자칫 지나칠 번 하였다. 나이는 70대 중반, 깨끗하고 수수한 차림의 여자, 약봉다리가 들어있음 직한 작은 가방을 메고 있는 노인을 반갑게 모셨다.
“과천에 가요.”
“예. 어느 길로 갈까요?”
“막히지 않는 길로 알아서 가주세요.”
정답이다. 그런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봉터널을 지나 양재천 뚝방길로 들어섰다.

  메타스퀘어나무가 터널을 이룬 아름다운 길이다. 왕복2차로의 좁은 길이지만 신호등이 적어 많이 이용하는 도로다. 과거에는 그랬다. 우면동에 보금자리 아파트가 건설되기 전에는 한적한 길이었다. 우면동의 아파트단지를 통과할 때까지 주춤주춤 제자리걸음이다.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를 안 내려고 조심하는 듯하였다. 작게 들리는 소리는 분명 과자나 빵의 포장비닐 소리였다.

 가난한 식사를 마치신 노인이 길이 막힌다고 짜증을 부리시었다. 다른 길도 이 시간에는 막힌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우면동 아파트단지를 통과했다.
“과천 8단지로 가요.”
“예. 8단지에 사세요?”
“농협마트애서 주문하고 다른 데로 갈 거요.” 농협마트를 모른다고 하니까 길을 안내하신다고 했다.
“부림동쪽으로 좌회전해서 쭉 가세요.”

 농협마트가 안 보였다. 해는 지고 어둑어둑하였다. ‘조금 더 가 봐요’ ‘눈 수술을 해서 잘 안 보여요’ ‘돌아서 가요’ 날은 어두워지고 눈은 침침해지고 찾는 마트는 안 보이고 난감한 상황이다. 가까스로 농협마트를 찾았다. 농협마트가 아니고 농협마트를 끼고 오른쪽으로 가면 엘지마트가 있단다. 우회전 좌회전 8단지 아파트다. 잘 못 왔다고 뒤돌아서 다시 농협이다. ‘왜 이렇게 눈이 안 보인댜’ 길가는 젊은이를 붙잡고 농협마트를 물으시었다.

 착한 청년이 바쁜 걸음을 멈추고는 핸드폰 검색을 하고 돌아서 가라고 하였다. 내 차에도 내비가 있는데, 농협마트는 지나 왔는데, 노인이 찾는 곳은 엘지마트라고 하는데 다시 원점이다. ‘그냥 집으로 가시면 안 돼요?’ 노인은 마트에서 주문을 해야 된다고 하였다. 불법 유턴을 했다. 농협마트애서 주문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였더니 엘지마트에 가야 된다고 우기시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농협마트에서부터 더듬어 갔다. 다시 8단지 아파트 안으로 좀 더 들어갔다. 저 쪽에 상가건물이 있다고 설명을 했더니 거기가 맞는 거 같다고 하시었다. 엘지마트는 없었다. GS수퍼마켓 간판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전에는 엘지마트였나 보다. 엘지와 지에스는 사돈지간이긴 하다. 얼마 후 시장 본 것을 차에 실으라고 하시었다. 작은 포도상자 하나와 바나나 두 송이와 파 두 뿌리가 전부였다.

 집 근처에서 사면되지 꼭 여기서 사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추석에 쓸 걸 주문했다고 아리송한 말씀을 하시며 경마장으로 가라고 재촉을 하시었다. 경마장 앞에는 주택이 없는데 수상쩍은 생각이 들었다. ‘거기 농장이 있어요.’ 농장이라면 꽃밭과 과일나무와 농작물을 가꾸는 한가롭고도 넉넉한 풍경이 그려졌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부인을 맞이하는 점잖은 할아버지나 건강한 아들을 상상했다. ‘경마장 가는 길은 아시죠?’ ‘아저씨는 과천을 잘 모르시나 보다’ ‘경마장역 5번 출구에서 우회전해요’

 농장으로 가는 길은 좁고 울퉁불퉁하였다. 가로등도 없었다. 백 미터 쯤 들어가니 승용차 두 대가 주차되어 있고 맞은편에 트럭 한 대가 있었다. ‘아저씨 불 좀 켜 봐요. 당최 안 보이네’ ‘이렇게 많이 안 들어오는데’ ‘오른쪽에 철망이 있을 거요’ ‘지나 왔나보네. 돌아서 나가요.’ 몇 번의 전 후진으로 차를 돌려 나왔다. 큰 길이다. 다시 돌려서 들어갔다. 도로 그 자리다. ‘파란색 철망이 안 보여요?’ 무슨 망인지 답답하였다.

 마침 트럭 주인이 있어 이 할머니를 아시느냐고 물어보았다. 차 안을 들여다보고는 여기 내리시면 된다고 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구세주를 만난 듯 답답한 마음이 환해졌다. 카드를 받아 요금결제를 마치고 물건을 내려드렸다. 바나나 한 송이를 갖고 가라는 것을 극구 사양했다. 어둠이 짙어서인지 농장은 아니 보이고 오른쪽으로 좁은 통로가 있었다. 기운이 없으니 시장 본 것을 갖다 주어야 한다며 요금이 얼마냐고 물으시었다.

 이만이천원이라고 했더니 할인을 해주어야 한다고 당연한 듯 쳐다보시었다. 농장의 환상은 버렸다. 바나나 한 송이를 주려고 하지 않았던가. 천 원짜리 두 장을 드렸다. ‘왜 이 건만 주느냐’ ‘얼마나 드릴까요?’ ‘오천 원은 줘야지’ 순간 화가 났다. ‘손님 모시고 두 시간이나 넘게 헤맸어요.’ 천 원을 더 드리며 말했다. 작은 포도 한 상자, 바나나 두 송이, 파 두 뿌리와 약봉다리가 들어있는 작은 가방을 들고 개미굴 같은 통로를 지나갔다.

 얕으막한 움막 문 앞에 물건을 내려놓고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를 하였다. 노인은 택시요금 오천 원을 깎지 못해 서운하신지 묵묵부답이었다. 인기척도 없고 강아지 소리도 닭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강산이었다. 차를 돌려 좁은 길을 빠져 나오는데 퇴근하는 사람들이 몸을 옆으로 비껴주었다. 농장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가보다. 서울로 오는 내내 기분이 언짢았다. 천 원짜리 두 장을 움켜쥐고 있는 내가 너무 초라하였다. 앞에 있는 BMW 작은 차가 뚜껑을 열고 날개를 폈다 접었다. 젊은 여인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