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자유게시판 >  자유게시판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 이야기    
글쓴이 : 이하재    20-08-16 19:01    조회 : 5,563
*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 이야기 *

45.
 억! 나를 기죽게 하는 말이다. 숫자에 둔감한 편이지만 동그라미가 몇 개인지 손가락을 꼽으며 세어봐야 안다. 아라비아숫자로 표기하기에는 너무 길다. 그 길이만큼 큰 숫자의 단위다. 이제껏 천 원짜리 지폐를 받고 주며 살아왔다. 어쩌다 만 원짜리 지폐라도 받으면 대왕님을 모시 듯 깍듯이 곱게 접어 보관하곤 했다. 그나마 현찰을 구경하기 힘든 요즘이다. 기본요금도 카드결제를 하기 때문이다.

 “OOO삼촌 대박이다. 잠실 XXX아파트 며칠 만에 오억이나 올랐대.” “와! 대단하다. 요양병원과 어린이집으로 나오는 국가보조금도 몇 천 만원씩이라며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OOO삼촌 정말 부럽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손님 둘이서 나누었던 대화다. 역시 부동산투자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요지의 대화다. 둘 이상이 모이면 어느 아파트가 몇 억이고 얼마가 올랐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한 번 오른 가격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왜 부동산가격은 오르고 오른 가격은 떨어지지 않을까.

 첫째, 수요와 공급의 문제다. 과정이 어찌되었든지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가격상승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코로나19의 초기대응단계에서 마스크 대란과 비교된다. 공급을 늘리고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으로 가격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상식적인 정책은 난마처럼 얽힌 이해당사자들의 불화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가격의 안정이나 하락보다 가격상승을 원하는 집단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는 부동산가격의 하락을 원치 않는다. 부동산가격이 높고 거래량이 많을수록 거둬들이는 세금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국가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높은 가격의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 되어야 한다. 부동산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 국가경영에 큰 차질이 생기게 된다. 정부가 필요로 하는 국민은 세금을 많이 내는 부유층이지 세금 한 푼 못내는 가난한 백성은 아니다. 빈곤층은 선거 때만 유용한 계층이니 적당히 생색을 내면 되기 때문이다. 

 셋째, 부동산전문가들이 너무 많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공유가 쉬울 뿐만 아니라 대학교의 부동산학과에서 전문가(투기꾼)들을 양산하고 있다. TV에 자주 나오시는 XX원장이라는 분의 부동산투자 강의 테이프를 열심히 듣던 손님이 있었다. 잠실 재건축단지 등에 투자해라, 몇 군데의 신도시 예상지역을 공략해라는 둥 열심히 발품을 팔면 보상을 얻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족집게 강의답게 실제로 그 곳에 신도시가 들어서고 그 동네가 재건축이 되었다.

 넷째, 집값이 오르기를 원하는 국민이 내리기를 바라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듯 집을 장만하기 전과 후의 마음은 완전히 다르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라도 내 것이 되고나면 집값이 껑충껑충 뛰어오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래야 은행대출금도 갚고 빈곤층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게 된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한 사람들 모두가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데 어찌 안 오를까.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공무원도 국회의원도 장관도 대통령도 주택 소유자다.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인간들, 말께나 한다는 사람들, 힘 좀 쓴다는 사람들 중에는 부동산거래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다. 앞선 정보와 지혜와 수단으로 잘 사는 사람들을 나무랄 일은 아니겠으나 집 때문에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국민이 없어야겠다. 토지주택공사와 도시개발공사 등의 공공기관은 누리는 혜택만큼이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땅장사를 해 엄청난 수익을 올려 자기식구들끼리 보너스잔치만 하지 말고 임대아파트를 많이 지어 보급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다양한 평수의 임대아파트를 지어 생활수준에 맞게 보급한다면 주택수요억제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평생 돈을 모아도 몇 억의 돈을 마련하기란 비상한 재주가 없는 흙수저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내 집이 없어도 특별한 날에는 쇠고기와 꽃게탕을 먹고 싶다. 전망 좋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양주도 한 잔 마시고 싶다.             

강남 아파트

땅을 깊이 파고 쇠말뚝을 심으면
아파트가 무럭무럭 자란다
억, 억, 억소리를 내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다.
망치질하던 우씨가
억센 팔뚝을 주무르며 한숨짓는다.
몇 년을 더 모아야 하나
꿈이나 꾸지 말걸
아파트는 아파도 자란다
이른 새벽 봉고차에 실려 온
조씨, 지씨, 나씨, 감씨, 방씨......
땀과 눈물 먹고 자란다